용기라고 하면 앞으로 벌어질 일이나 헤쳐나가야 하는 일을 할 때나 쓰는 단어 같지만
나는 용기 중의 으뜸은 그만둘 용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20살이 되자마자 시험을 준비했다. 관련 과이기도 해서 주변에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당연한 수순인 거처럼 20대 중반까지 공부를 계속해나갔다.
하지만 낙방하는 해가 늘어갔고,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갔다.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끝도 없이 떠올랐다.
공부에 능력이 없다는 생각도, 이러다가 영원히 시험준비만 하는 고시생으로 남을 거 같다는 생각도...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포기하고 도망가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20대 초반부터 시작했던 공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나에게 그 시간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었다.
약 5년의 시간 동안 내가 했던 행동을 무의미하게 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더 이상 지속할 의지도 없었지만 그때 더 무서운 건 포기하는 거였다.
더군다나 한 번만 더 준비하면 시험에 붙을 것 같았다. 혹시 합격의 한발 안에서 뒤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나를 더욱 옥죄였다.
그 사이 함께 준비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합격을 하고
친구들의 합격은 나에게 잔인한 희망이 되었다.
조금 더 하면 나도 될 수 있다는 잔인한 희망..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를 설득시키는 일이었다. 도망가는 게 아니라 다른 길을 위해 방향을 바꾸는 거라고 아무리 스스로를 설득해도 자꾸만 패배자가 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데 목구멍 위로 뭔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으면 소리라도 지를 것 같았다.
그러고 황급히 강의실에서 뛰어나온 나는 학원가를 정처 없이 걸었다.
정말 오랜 날을 지나온 골목을 걷고 또 걸으면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이제는 그만하고 포기할 용기를.
그리고 그 용기들이 나를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용기도 만들어 주었다.
포기하고 그만둔다는 건 새로운 길의 문이 열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끝까지 이뤄내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가끔은 그만둘 용기도 삶에서 너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