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빈칸, 여백

by 읽고쓰는편

꼼꼼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유행하던 10분마다 계획을 할 수 있는 플래너를 썼었다.

그 플래너의 시간은 한 시간에 6칸, 하루면 144칸으로 나눠져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갓생'을 위한 플래너였다.



10분마다 쪼개진 빈칸을 모두 채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144칸 중에 빈칸이 없이 꽉꽉 채워 넣어야만 하루를 잘 산 것 같았다.

나는 그 작은 칸 중에 몇 칸만 채우지 못해도 그 하루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다며 자책했다.

내가 해낸 다른 칸들이 아니라 채우지 못한 빈칸에만 매달렸다.

그리고 그 빈칸을 모두 채우기 위해 잡다한 모든 일들을 플래너에 적어 넣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그때에,

매일 내가 한 일들이 아닌 빈칸만 바라보며

자존감이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가장 부족했던 것 같다.



지금은 하루에 집중해야 하는 일 3가지 정도만 정해놓고 그 일만 집중해서 일한다.

10분마다 채워 넣던 그 빈칸에 집착하지 않고, 해야 하는 일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자연스럽게 시간의 여백이 생겼고, 그 여백 속에서 나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다.



그림이든, 글이든, 삶이든 간에

여백이 없으면 정작 중요한 중심을 찾기 힘들다.

반대로 생각하면 중심이 없을수록,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빽빽하게 채워서 그것을 감추려 한 것이 아닐까.



삶에서 여백이란, 그저 '텅 빈' 것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내 인생에서도 의미 있는 여백이 많았으면 좋겠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