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한 장에 깨진 내 머리

by 읽고쓰는스캇

12월이 되면서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

소위 병렬 독서 중이다.


그중에서도 손이 자주 가는 책이 두 권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스즈키 유이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다.



어제저녁, <사피엔스>를 잠시 읽다가 '불의 발견'에 대해 읽게 됐다.

'불'이 얼마나 인류에게 큰 사건이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아버지는 라이터로 담배를 피우셨다. 내게 불은 그냥 '일상적인 도구'였다.

하지만 불을 처음 손에 쥐었던 인류에게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책을 통해 깨달았다.


인류가 불을 발견하고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의 질서가 바뀌었고,

음식을 좀 더 쉽게 소화하게 되었고,

포식자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수단이 되었고,

혹독한 추위를 버티게 해주는 생존 장치가 되었다..


결국 불은 생존을 넘을 수 있는 시초였고 '창조의 힘'으로 확장되었다.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개념이 생긴 것도 불에서 시작된 셈이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인류사 전체를 흔들어놓은 가장 근본적인 발견이 아니었을까 싶다.


불의 위대함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떠올랐다.

인간에게 불을 건네줬다는 이유로 영원한 형벌을 받은 신.


처음 이 신화를 들었을 때, '불 좀 줬다고 벌까지?'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불을 인간에게 준 행위는 단순한 도움을 넘어 신들의 질서를 흔드는 사건이었다.


불은 기술의 씨앗이었고, 신이 독점하던 힘이 인간에게 넘어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불 하나로 인해 자연의 흐름이 바뀌었고,

신의 관점에서 불을 다루는 인간은 위협이었을지 모른다.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은 그래서 기술의 이중성을 상징한다고 느꼈다.

불을 얻은 인간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그 발전의 이면에는 책임과 불안이 따라왔다.


이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AI 기술, 핵기술, 유전자 편집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기술은 문명을 앞당기지만, 동시에 무엇을 바꿔놓을지 모르는 두려움도 함께 남긴다.


어쩌면 우리가 불을 다스리게 되는 순간부터

통제할 수 없는 힘을 다루는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기술 발전은 어떻게 될까.

개인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두렵다.

조금 덜 빨라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의 발전 속도는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조금은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나아가는 것이 더 건강한 발전일지도 모른다.


처음 불을 발견하고 시험해 보았던 인류처럼.

우리 역시 조금은 천천히 앞으로의 기술을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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