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나쁘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에게 있어 뒷담화는 조금은 부정적인 이미지에 가깝다.
회사에서 누군가로부터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듣거나, 어쩔 수 없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해야 했던 경험.
그것들이 쌓여서 뒷담화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그리고 뒷담화는 최대한 피하고 싶은 영역이었다.
하지만 뒷담화를 이용해 누군가와 가까웠던 순간들도 있었다.
서로의 비밀을 공유한다는 느낌, 서로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느낌에 멀었던 거리감이 순식간에 줄었다.
그래도 내 기본적인 스탠스는 뒷담화는 좋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피엔스>를 읽는 중, 뒷담화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됐다.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뒷담화를 '인류가 복잡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내가 나쁘게만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진화의 도구였다니. 조금은 생각지 못한 진실이었다.
카페가 오피스 상권이라, 여러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손님들 사이의 작은 대화를 간혹 들을 때가 있다.
대화를 엿듣겠다는 의도는 없지만, 짧은 점심시간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말들은 그들의 친밀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처럼 느껴진다.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 회사 시스템에 대한 불만, 상사에 대한 투덜거림까지.
특별하지 않은 대화는 아니지만, 그 대화 사이의 친밀함을 엿볼 수 있는 대화이다.
누군가가 뒷담화를 한다는 건, 듣는다는 건.
그만큼 내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담 없이 털어놓는 일상의 하소연은, 관계의 온도를 조금은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초기 인류는 서로를 믿어야만 생존이 가능했을 것이다.
누가 위험한 행동을 하는지, 누가 믿을 만한지, 누가 약한 지 등.
소소한 정보지만 이런 정보를 빠르게 공유해야지 내가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뒷담화가 필수다.
뒷담화는 누군가를 헐뜯는 행위가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비공식 정보망이었다.
이런 생각에 미치고 나니
뒷담화를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 없었다.
지금 사회를 떠올려봐도 비슷하다.
뉴스만 보더라도 누군가의 행동이나 발언을 두고 끊임없이 '이야기'가 생산된다.
그리고 그 소식은 쉽게 왜곡되기도 하고, 확대 재해석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정도를 듣는 나의 태도다.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까지 경계할 것인가.
그 판단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이제 나는 뒷담화를 단순히 나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뒷담화는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사용해 온 하나의 사회적 기술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좋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의 감정, 인간관계, 그리고 공동체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은 방법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다.
<사피엔스>에서 나온 뒷담화 이론은 내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때때로,
뒷담화는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또 하나의 소소한 방식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뒷담화는 최대한 자제해야지.
나에게 유익한 말만 가려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