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카메라를 샀다. 잘한 걸까.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지르고 말았다.
2월 초부터 아내는 내게 말했다.
"조금 가볍고, 이쁘게 찍히는 카메라를 사고 싶어."라고.
아내에게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흘려 넘겼다.
디지털카메라의 운명이 어떤 지 잘 알고 있다. 처음엔 어딜 가든 들고 다니다가, 어느 순간부터 선반 위에 올라가 먼지만 쌓인다. 난 이 결말을 이미 한 번 경험했다.
예전에 캐논 5D Mark2를 사용한 적이 있다. CG 일을 할 때였다.
영화 소스도 촬영해야 했고, 영화 쪽 일을 하려면 카메라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무리해서 카메라를 샀고,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F-Stop, 셔터 스피드, ISO를 배웠다. 매뉴얼 모드로 완벽하게 쓸 수 있다는 말은 못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찍으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의 감은 갖고 있다.
그러다 CG 일을 그만뒀다.
카메라는 무거웠고,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은 점점 좋아졌다.
굳이 들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카메라와 렌즈를 중고로 팔았다. 그때는 미련이 없었다.
설날 연휴가 되기 전부터 아내가 리코로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다.
스마트폰 사진과는 확실히 결과물이 달랐다.
조금 바랜 듯하면서도 따뜻한 색감. 리코 특유의 색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고민 끝에 리코 GR3xHDF를 주문했다.
오늘, 카메라가 도착했다.
상자를 열자마자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인데 결과물이 궁금했다.
작동법이 익숙지 않아 버벅거리면서 몇 장을 바로 찍어봤다.
천장, 해가 지는 창 밖의 모습, 책상 위의 놓인 달력 등.
별거 아닌 피사체인데, 화면에 담긴 결과물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이폰 12 프로가 구형이라 그런지, 차이가 눈에 더 선명하게 보인다.
사진 몇 장을 넘기다 아내에게 "리코 카메라 색감도 좋고, 잘 산거 같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왔다.
소유권은 아내에게 있다.
아마도 아내가 더 많이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들고나가서 찍을 생각이다.
카메라가 생기니 어딘가 나가야 할 것 같다.
디지털카메라로 뭔가를 담고 싶어진다.
카메라를 샀다. 잘한 걸까.
아마,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