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써야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마흔이 되면 세뱃돈을 받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조카에게, 나보다 어린 사촌동생에게 용돈을 쥐여주는 일이 더 많을 거라 여겼다.
근데 이번 설, 나는 봉투를 받았다. 아내의 할머님과 장모님으로부터.
설날, 당연히 새해 인사를 드렸을 뿐인데, 두 분 모두 "건강하라"는 말씀과 함께 봉투를 건네셨다.
마지막으로 받은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10년도 넘게 받아본 적 없는 세뱃돈이었다.
막상 봉투를 받고 나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겉옷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봉투를 넣으면서, 아내에게 "맛있는 까까 사 먹자"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받아서였을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봉투를 다시 꺼내 보니, 기분이 조금 달라졌다.
할머님은 연세가 있으시다.
분명 어딘가에 쓰셔야 할 돈을 아끼셔서 건네신 거겠지.
장모님은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신다.
장시간 서계시는 일이라 몸이 고되실 텐데
그 시간들이 담긴 돈이었다.
마흔인데 너무 철없이 받아온 건 아닐까?
거절했어야 했나 싶다가도, 받아오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마음이 담긴 걸 거절하는 게 어쩌면 실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돈만큼은 제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통장에 넣었다가 쓸지, 현찰로 바로 쓸지 잠깐 고민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에게 진짜 가치 있는 걸 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읽고 싶었던 책, 새 신발, 그리고 최근 가장 고민했던 키보드.
현재 마음이 기울고 있는 건 키보드이다.
요즘 컴퓨터 앞에서 그래픽 작업보다 타이핑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더 많이 쓰는 게 올해 목표인데, 현재 갖고 있는 일자형 키보드는 손목에 조금 부담이 된다. 그래서 인체공학용 키보드를 갖고 나면 조금은 편하게 타이핑할 수 있지 않을까?
두 분이 건네신 돈이, 앞으로 꾸준히 써 내려갈 수 있는 힘이 될 것만 같다.
봉투는 아직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뭘 살지는 거의 정했다. 그런데 결제 버튼 앞에서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너무 오래 고민하면 아무것도 못 살 것 같으니, 조만간 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