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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케혀 Jul 25. 2019

할아버지와 교회

아파트 같은 라인에 노부부가 살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자주 마주치는데 인사를 할 때면 할아버지는 "어디 갔다 오니?", "운동을 가는 길이냐"며 몇 마디 말을 걸어오신다. 그것이 그리 싫지 않아 물음에 답을 하고 엘리베이터가 땡 하고 멈추면 먼저 인사를 하고 내린다. 보통 퇴근 후 귀가 시간이 비슷해서인지 자주 부딪혔는데 늘 하는 대화는 비슷했다. "퇴근하고 오는 길이니" "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이 오면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고 나는 인사를 하고 먼저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이웃 간의 대화라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같이 타게 되었다. (이전에 할머니와도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지만 그저 인사만 나누었을 뿐이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주말에 교회에 한 번 나오지 않을래? 좋은 얘기도 많이 해주는데”하고 말씀하셨다. 옆에 있던 할머니는 "가면 예쁜 아가씨도 많은데"하며 운을 뗐다. 나는 속으로 아무리 그래도 신성한 교회에 이쁜 아가씨가 많다고 오라고 하다니 사이비인가 하고 혼자 생각했다. 나는 "아, 약속이 있어서요, 담에 시간 나면 한 번 갈게요."얼버무리면서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이렇게 말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그 뒤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날 때마다 교회를 언제 갈 것인지 물었고, 계속되는 ‘너 교회 아이가니?’ 공격에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한 나는 "그럼 일요일 오전에 연락할게"라고 말하는 할아버지 입을 멍하니 쳐다 볼뿐이었다. 요즘 교회는 정보기관 뺨치는 정보 수집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엘리베이터를 내리며 '내 연락처를 모르는데 무슨 수로 연락을 한다는 말이지?' 저러다 말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인터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받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경비 아저씨가 택배를 찾아가라고 호출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수화기를 들자 할아버지 목소리가 초속 340m의 속도로 귀에 다가와 박혔다. 



그렇다 나는 교회에 갔다. 교회에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주차할 곳이 없어 근처에 있는 큰 마트 주차장을 이용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가는 도중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대로 거절하지 못한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해서

화가 났고 브라질 간판 공격수 네이마르처럼 끈질기게 골문을 노린 할아버지가 싫었다. 인상 좋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이고 했던 것이 다 교회로 인도하긴 위한 짜인 각본이라는 말인가....  



교회를, 나아가 기독교를 폄훼하거나 비하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집요할 정도로 교회를 가자고 부추겼다. 세탁소 아주머니가 그랬고 길을 가다가고, 지하철을 타다가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교회를 가자며 소매를 잡아 끈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절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한 사람을 데리고 갈 때마다 달란트가 떨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기독교 내에서 나와 같이 생긴 사람은 죄를 씻고 하느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일까. 요즘 교회는 기업과도 같다고 하던데 헌금이 부족한 것은 또 아닐 테고.  



그날 교회에 억지로 끌려가서 나는 찬송가 한 구절도 따라 부르지도 않았고, 예배할 때조차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다. 높으신 분이 단상에 올라 좋은 말씀?을 할 때 조차도 그저 스마트폰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 나를 할아버지, 할머니는 흘끗 흘끗 처다 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게 있었다. 오전 예배가 끝나고 건물을 나서며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점심을 먹고 가게”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교회를 벗어났다. 뭔가 위험 지역을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도 할아버지와 몇 번 마주쳤다. 교회에서의 태도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아서 인지 다행히 더 이상 교회에 가자는 말씀은 없으셨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동안 적막한 분위기가 싫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이면 밖에서 기다렸다가

다음 것을 타고 올라간 적도 있었다. 



뭔가 내가 하는 거절이 상대방과의 관계를 서먹서먹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제대로 그리고 딱 부러지게 하지 못한 거절이 나를 그리고 상대를 더 피곤하게 했다. 거절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와의 관계를 끊는다면 그것 또한 잘된 일이지 않을까? 떠날 사람은 빨리 떠나는 게, 앞으로 그만큼의 피곤함은 덜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거절>  

대부분 부탁을 잘 들어주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오히려 '잘 거절하는 사람'에게 존재감과 영향력을 느낍니다. 주관이 뚜렷하며, 쉽지만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1) 나만의 작은 거절 규칙을 만들어 보자. (밥 따로 먹기, 술 약속 거절하기)  

2) 거절이란, 내 안의 진심을 전달하는 것이지, 관계를 망치는 것이 아니다.  

3) 거절은 나를 더 단단하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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