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언제나 그랬지만 '취업률 저하, 일자리 부족, 신입사원 퇴사율 상승' 등 단골 뉴스거리들이다. '최근 일자리 넘쳐나 청년들 행복한 고민', '회사생활 만족도 상승'이라는 뉴스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회사에 출근하고 싶어 갖은 고생을 하고 들어가지만 못해먹겠다고 나오는 사람 또한 많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자의든 타의든 놀고먹는 사람이 전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 나도 포함된다. 백수니까 말이다. 재취업은 어렵고 그렇다고 아무 회사나 들어가 일은 하기에는 또 그렇다.
백수는 외로운 존재다. 특히나 나이 든 백수는 더 그렇다. 건사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그 나름 가장으로써 역할을 하지 못해 괴롭고 미혼인 백수는 남들은 결혼해서 애 놓고 잘 사는데 본인은 일도 하지 않고 빈둥되고 있으니 불안해서 괴로울 수밖에. '남들은 브랜드 아파트를 샀다. 외제차를 뽑았다'는 둥 좋은 소식을 SNS에 자랑하는 반면 자신은 보잘것없다.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변 동병상련을 나눌 백수 친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다들 일하기 때문에 백수의 푸념을 들어줄 친구도 없다. 친구가 푸념을 들어준다고 한들 일자리가 생기는 건 더더욱 아니다. 출근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니 늦게 일어나고 씻지도 않는다. TV나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새벽에 잠들기 쉽다. 낮과 밤이 바뀌고, 돈이 나가니 외출도 하지 않는다. 요즘은 음식 배달도 아주 잘 되어 있어 어떤 음식이든 어플로 주문만 하면 가져다준다. 더더욱 나갈 일이 없다.
안타깝게도 백수한테 누가 일자리를 물어다 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가만히 있으면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나태해진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을 길을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없는 길이라도 만들어서 가야 한다. 힘들겠지만 다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 나가야 한다. 아래는 내가 백수 생활을 하면서 나름 원칙이라고 세웠던 것들이다. 마음먹기는 쉽지만 실행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실패도 했고 원칙을 어기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지키려고 했던 것들이고 그래도 계속 걸어 나갈 수 있게 도움을 줬던 원칙들이다. 여전히 ing 중이지만 많은 백수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끄적인다.
1. 용모를 단정히 하자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에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수염을 깎고 세수를 하자. 잠옷 (츄리닝, 편한 옷)을 벗고 나름의 외출 복장을 입는 것 까지. (출근룩이면 아주 좋다) 누가 봐도 백수처럼 모자를 눌러쓰고 슬리퍼를 끌면서 다니지 말자. 외형에 신경 쓰는 것이지만 결국은 마음가짐의 문제이다.
2. 집 밖으로 튀어라!
이건 아주 중요하다. 집에 있으면 긴장감이 없다. 부모님하고 같이 산다면 등짝 스매싱을 맞을 수도 있겠지만 집은 아주 편안한 곳인 만큼 뭔가를 집중하기가 어렵다. 배부르면 앉고 싶고, 앉으면 습관적으로 TV를 켜고 싶다.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졸게 되어있다. 아침 일찍 남들 출근시간에 맞추어 집 밖으로 튀자.
3. 도서관을 직장이라고 생각하자.
도서관으로 출근 도장을 찍으로 가자. 조용한 카페도 좋지만 카페는 커피 한 잔을 사야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오래 앉아있으면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도서관은 하루 종일 있어도 눈치 주는 이 없다. 두 번째 도서관에는 없는 게 없다. 다양한 분야의 책이 넘쳐나고 그간 부족했던 공부도 할 수 있다. 게다가 컴퓨터까지 구비가 되어 있어서 할 수 있는 게 아주 다양하다. 세 번째 독후감 쓰기라던지, 문화 사색 등 다양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으니 참여해서 즐기기 또한 좋다. 이력서를 쓰다가 막히면 잠시 쉬어가면서 재미있는 소설을 읽자.
보통 대부분의 도서관은 월요일과 국가공휴일에 휴관한다. 하지만 잘 찾아보면 월요일에도 문을 여는 도서관이 있으니 이 카페 저 카페 돌아다닌다는 마음으로 이 도서관 저 도서관 다녀 보는 것도 좋다.
4. 운동하라
백수는 밤에 불면증에 시달린다. 낮에 활동량이 많지 않으니 밤이 되어도 잠이 오질 않는 것이다. 집에 있으면 낮잠을 자게 된다. 그러니 밖에 나와서 그동안 바빠서 또는 일하느라 가보지 못했던 곳이나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다. 특히나 요즘은 어느 지역이나 산책하기 좋은 코스가 많으니 어디든 걸어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낮에 걷는 것이다. 백수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며 혼자 고립되기 쉽다. 그러한 고립이 우울함을 불러일으킨다. 그럴 때일수록 집 밖으로 나와 햇볕을 많이 보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뒷 산이어도 좋고 공원도 좋다. 긍정적인 마음은 건강한 몸에서만 나온다. 밤에 운동하는 것도 좋지만 낮에 햇볕을 보며 일정 시간 걷는 것을 추천한다. 젖은 빨래를 말리듯 햇볕은 백수의 축축한 마음도 말려주기 때문이다.
5. 홀로 가지 말고 함께 가라.
앞에서 언급했듯이 백수는 사회에서 주변 관계에서 고립되기 쉽다. 뜨거운 물을 부은 페트병처럼 쪼그라들기 쉽다는 것이다. 죄인도 아닌데 스스로 자책하고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단지 현재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그러지 말자. 얼마나 백수 짓을 더해야 할지 막막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은가. 자신의 현 위치에서,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현재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수밖에. 이럴 때일수록 밖으로 나가 타자들과 접속해야 한다. 비슷한 처지의 백수도 좋고 스터디 모임도 좋다.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해 읽고 토론하고 배우고 소일거리라도 하자.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정보를 얻는 것이고 누군가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다시 힘을 낼 원동력을 가져다준다. 오프라인 모임이 부담스럽다면 온라인 모임, 강의도 많으니 참여해보자. '감이당', '숭례문학당'등 온라인으로 참여 가능한 커뮤니티가 많다. 취업 준비도 좋고,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것도 좋다. 그간 바빠서 못했던 취미생활을 다시 배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1세기는 '다 함께 고독한' 시대가 되고 있다. 핵가족인 1인 가구로 쪼개지더니, 그나마 그 1인들이 집 안 아니 골방에 틀어박혀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골방족들은 주로 밤에 움직이고 낮에 퍼져 자는 식으로 산다. 밤에 하는 짓은 게임 아니면 쇼핑 아니면 미드 혹은 야식... 이건 정말 최악이다.
(중략)
무조건 집 밖으로 튀어라!
(중략)
지금 당장의 삶을 유예시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렇게 미루다간 한순간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다. 가족에게든 자신에게든 최고의 선물은 지금 당장 잘 사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아침에 나가 밤에 돌아오면 된다.
일단 걸어라! 발길 닿는 대로 걸어라.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많은 것을 배우고 발견할 수 있다. 거리 자체가 책이요 텍스트다.
특히 걷기와 수면을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숙면을 취하려면 햇빛 속에서 하체를 움직여야 한다. 출발은 골방을 박차고 튀어나오는 데서 시작한다. 나와야 길이 생긴다. 길은 걷는 것이다. 그러니 걸어라! 자신의 두 발을 믿고 당당하게 나아가라. 다리를 움직이면 머리가 맑아진다.
걸음아, 날 살려라!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_고미숙
지금이야 우울증이 감기보다 흔한 병이 되었지만 18세기 조선에선 아준 드문 질병이었다. 농업경제 시대라 육체노동이 주를 이룬 탓에 정신적 질환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몸을 많이 쓰면 마음이 편하고, 몸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비대해져 병이 되는 이치다.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_고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