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케혀 Jan 21. 2022

한 박자 늦는 사람

 근래 날씨가 추워지고 미세먼지까지 심한 날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레 실내 생활이 늘었어요. 미루고 보지 못했던 '오징어 게임'을 정주행 했고요. 습관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봤답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톡 그리고 포털사이트'까지 TV를 보면서도 간헐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봤고 음악을 들으면서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래도 나름 다른 사람들보다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얼마 전에는 장시간 소파에 기대어 TV를 보고 자신도 모른 채 굽은 목으로 오래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서 목과 어깨 그리고 등에 담결림까지 오고 말았어요. 목에 깁스를 두른 환자처럼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쉽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TV와 스마트폰에서 양질의 정보와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지혜를 얻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연예계, 정치계의 가십과 루머, 소고기 먹방, 자동차 시승기, 제품 리뷰까지 모르고 살아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들을 보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세상에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고 했나요?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행복감을 떨어트린다. 


 각종 스캔들로 인해 우리는 일부 연예인의 사적인 대화 내용을 너무 많이 알게 되었다. 살면서 한 번이라도 마주칠 수 있을까 싶은 검사들의 이름도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되었다. 누가 누구의 라인인지, 그가 어느 부서에서 어느 부서로 좌천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중략) 


 인터넷 접속은 하루 세 번이면 충분하다. 문자나 카톡, 이메일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큰일이 생기는 사람은 극소수다. 


 알 권리와 알 가치의 불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무식함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제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겠어요? 하하!' 이 말을 자주 써야 한다. 소문에 느리고 스캔들에 더딘 삶이 좋은 삶이다. 


 이제 세상에 대해 위대한 저항을 시작해야 한다. 모두가 실시간성에 집착할 때, 한 박자 늦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야 한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는 행위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끊임없이 접속하느라 분주한 것 같지만 실은 단 한 발짝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지 않는 나태다. 바쁨을 위한 바쁨일 뿐이다.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관심이다. 행복 천재들의 또 하나의 비밀 병기다


<아주 보통의 행복> _최인철 



 2019년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40%는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생각하며 하루 평균 4시간 스마트폰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제한되고 줄어들어 지금은 더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과 보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하루 8시간 수면을 취한다고 했을 때 나머지 16시간 중 4분의 1을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죠. 우리가 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사실 자신도 모르게 TV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흘려보낸 시간이 많아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절반만 줄여도 우리가 연초에 계획한 영어공부, 운동, 글쓰기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http://digitalchosun.dizzo.com/site/data/html_dir/2019/07/31/2019073180048.html



 'TV'처럼 중독성이 강하고 흡인력 있는 물건도 없다. 시청자를 성숙시키는 프로보다는 자극시키는 프로가 많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청하는 프로는 자아개발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사실은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우리의 관심을 흐트려놓는 판에 박힌 일들을 잘 추려서 우선순위를 매긴다면 지금처럼 시간이 없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올까? 


<몰입의 즐거움> _미하이 칙센트



 지금까지만 보면 스마트폰은 인간을 스마트하게 만들었다기보다 스마트하게 인간을 구속하게 된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는 인간이라는 입력자/조력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일상화되면 인간과 스마트폰이 하나의 기계로 일체화됩니다. 흘러가는 정보의 노드로만, 혹은 그것의 컨트롤 패널로만 기능하는 것이지요. 정보를 확인하고 다른 데로 보낸다, 이건은 봇 bot들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인간에게 시키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간만이 돈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 시대의 인간 군상>_김영하



 

 저의 경우 안타깝게도 여전히 적지 않은 시간을 스마트폰을 보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많은 시간과 더불어 잘못된 자세로 인해 담결림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죠. 그럼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스마트 기기들 또한 적당히 조절하여 잘 사용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쉬웠다면 중독되지 않았겠죠. 아이러니하게도 더 스마트 해지고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디지털 기기로부터 멀어지고 아날로그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광고로 범벅된 포털 뉴스보다는 종이 신문을,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보는 것이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스마트폰 알림을 꺼두고, 중요한 일을 하거나 집중을 요하는 일을 할 때는 '방해금지 모드'나 '무음 모드'로 전환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잠자리에 스마트폰을 들고 가지 않고, 기상 알람은 스마트폰 되신 자명종으로 대신한다면 수면의 질에 훨씬 높아질 거라 믿어요. 그러고 보면 인간은 약간의 불편함을 안고 살아야 더욱더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게 아닐까 해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수중에 스마트폰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해 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