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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침에 미친 사람

중독을 중독으로 치료하다

by 회색달

(2023년 11월 22일 01시 04분)


“정말, 이래야겠어?. 한 번 더 생각해 보지 그래?”
오늘 아침에 있었던 팀장과의 대화다. 스물둘에 입사하여 10년이 넘도록 한 직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둔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 이번 일은 심각했다.


많은 업무에 힘든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변 동료들과 잦은 마찰이 큰 이유였다. 그로 인해 생겨난 마음속 얼룩은 아무리 지우려 애를 써도 그대로였다. 평소라면 사람들과 관계가 나쁠 일 없겠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리는 전화벨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날이 많으면 유독 그랬다. 괜히 사람들에게 마음에 화살을 날리니, 지금 와서 그때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창피함과 미안함 뿐이다.

혼자만의 자책과 반성, 후회를 반복하며 누군가의 위로를 갈구하던 시기. 쉽게 위로받을 방법을 찾았다. 나에 대한 어떠한 선입견도 없고 무엇보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 그와 함께라면 늘 마음이 편했고 스트레스까지 한 번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그는 바로 술이었다. 투명한 액체 속 달콤하고 새콤한 맛의 조화. 어렸을 적 나의 아버지께서 드시던 술이 이런 맛일까, 적당히 마시고 손에서 놓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그렇게 내 삶은 위로라는 달콤함에 속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지금 이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어. 그러니 잠시 휴가라도 다녀와. 마음 좀 가라앉히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사실 홧김에 저지른 일이었다. 그걸 어떻게 눈치라도 챘는지 그만두고 싶다는 말에 이유를 꼬치 코치 캐묻지 않고 잠시 쉬었다가 오라는 말이 가슴에 닿았다.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도저히 대화가 통하지 않는 선배 한 명과 긴 시간 동안 통화를 했는데, 순간 서로의 감정이 격양돼 목소리가 커졌다. 더 지켜보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옆에 있던 동료가 전화를 빼앗아 중재에 나서는 덕분에 일은 일단락됐다. 퇴근길에 친한 동료 몇 명에게 오늘의 일을 위로받는다는 핑계로 어김없이 술자리를 가졌는데, 문제는 위로에서 끝나지 않고 두통과 숙취로 이어진 것이다. 평소에도 욱하는 성격 탓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어쩌면 참을성보다는 끈기가 부족한 문제일 수도 있다.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끈기 말이다.

어쨌든 팀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그대로 사무실을 나와 공터를 찾았다. 술도 깰 겸 해서 건물 구석의 돌 틈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이십 대부터 입사한 이곳, 다른 사람들은 다 잘되는 것 같은데 왜 나만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일 때문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해답도 찾지 못했다. 그저 버티는 것만이 능사일까…….

시간이 흘렀지만 크게 바뀌는 건 없었다. 휴가 동안 생각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으려 했지만 당장 현실 앞에 서면 자꾸 고개가 숙어졌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얼굴이 빨개졌다. 이 정도면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쉬지 않고 반복되는 업무와 일상을 꾸역꾸역 해내는 생활. 지인의 추천을 받아 정신과에 들러 상담도 받아봤다. 약에도 의지해 잠을 청했다. 의사의 조언에 술 대신 음악을 듣거나 퇴근 후에는 집 근처 강변을 달리기도 해봤다. 마지막에 가서는 강 건너편을 두고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 댔지만…….

한참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집에 돌아오면 어두운 현관문이 나를 반겼다. 그런 분위기가 싫어 다시 나간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집 근처 카페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그러나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곳. 다시 가야만 했다.


사람의 각자 마음에는 큰 강물 줄기가 있다고 치자. 만약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메말라간다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 경험이나 기쁨으로 물줄기가 다시 불어날 때도 있겠지만 나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었다. 조금씩 마르던 물줄기는 어느덧 바닥을 보일 정도가 됐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이즈음이었다. 말 그대로 우울증 환자가 이런 마음이 아닐까 했다.

한번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 잠시 일했던 여행안내자 일과 사진작가 일을 병행하던 때가 생각났다. 일정치 못한 급여에 지갑은 가벼웠지만 분명 삶 또한 가벼웠다. ‘누가 억지로 등 떠밀어서 이곳으로 밀어 넣은 그것도 아닌데…….’ 문득 그때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졌다.

그 무렵 미친 듯이 독서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미친 사람처럼 책을 읽어댔다. 정신과 의사의 조언도 있었지만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다. 더군다나 사람이 일만 하면 어느 순간 커다란 공허함 (번 아우 증후군)에 빠질 수도 있다는 말에 내 삶에 더 가치 있는 일을 찾기 위한 방법의 하나였다. 처음에는 그동안 책을 읽는 습관이 없던 탓에 속도가 느렸다. 문장의 이해도 느렸고, 작가의 말에 공감도 못 했다. 책을 구매해놓고는 책상에 올려두었다가 며칠이 지나 생각난 적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건 읽는 중에 한 손에 펜을 들어 밑줄을 긋는 나를 발견한 때부터였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 그저 이름만 알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묘한 위로와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책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저자와 나의 끊임없는 대화. 상대가 한 문장을 이야기하면 다음 문장이 오기까지의 공백에 나의 궁금함이 새겨지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도구. 한발 더 나아가 책의 여백에 내 생각을 적기 시작했다. 지금과 보니 이 과정이 글쓰기였다. 그 뒤로 계속 읽고 스키를 반복했고 점차 ‘나’라는 존재에 가까워졌다.

밤늦도록 야근하더라도 집 앞 독서실을 찾아 한 편의 글을 쓰면서 새로운 날을 맞이했다. 재미있는 건 직장의 내 상황은 크게 바뀐 건 없지만 내 삶은 180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항상 눈을 뜨는 아침이 즐겁고 직장에 출근해서 쉬는 시간이면 찾았던 담배 대신 책과 볼펜을 들었다, 나의 삶 자체에 글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한때 방송 프로그램에 유명 연예인이 출연하여 다양한 재능을 가진 모습이 소개된 적 있었다. 직장을 다니는 자신의 모습 외에 마치 게임 속 ‘캐릭터’처럼 자신을 원하는 대로 꾸미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능력치를 끌어 올리는 과정이다. 마치 각자의 일상에 숨겨져 있던 재능이나 재미를 찾아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완성하는 시간이었다. 누구는 가수를. 또 누구는 게이머, 작가, 여행가, 코칭 활동을 하는 등의 ‘부케’를 만들어 삶을 즐겼다. 이런 활동은 평소 ‘해야 하는 일’에 치여 있던 내 삶을 조금 더 재미있게 하여 주는 활력소가 됐다.

나에게도 부케가 생겼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부케다. 직장을 바꾼 것도, 급여가 늘어난 것도 아니었으니 내 삶이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그러나 흔들리기만 하던 삶에서 ‘나’를 발견해낸 뒤부터는 든든한 무기를 얻은 기분이었다.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서류뭉치,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에서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일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려는 삶의 여유를 부릴 줄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의 업무 능률은 물론 생활 자체가 점차 밝아지며 술과의 거리도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었다.

이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짊어진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자신만의 방법으로 짐을 덜어내야 한다는데, 나는 그 방법을 이제야 깨달았다. 아직 어디 자랑할 만한 글도, 뛰어난 문장력도 없다. 그게 중요한가, 내 삶 그 자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에너지를 찾았으니 이만하면 최고치 않겠는가.

요즘은 퇴근 후에 개인 운동 코치를 찾아가 보디빌딩을 배운다. 남들처럼 대회를 나간다거나 특별한 목표는 없이 시작한 일이다. 그런데도 친하게 지내는 동료 몇몇은 벌써 ‘또 무슨 도전을 하려나’라고 묻느라 성화다. 올해 몇몇 글쓰기 공모전에 당선한 결과를 알고 나서부터 그랬다. 그럼 ‘이참에 뭐 하나라도 해볼까?’라고 농담도 던진다. 혹시 삶이 버겁고 무겁게 느껴진다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미친 사람처럼 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 술과 도박, 마약 등과 같은 위로라는 가면을 쓴 중독은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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