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가을에 있었던 일이다. 그동안 여러 공모전에서 얻은 상금이 있어 어디에 써야 좋을까 고민하다가 동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서류 발급 때문에 동사무소에 들렀다가 게시판에 붙어있는 내용이 생각 나서다.
'주변의 소외 계층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세요.'
언제부터 걸려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덜한 종이와 색이 바랜 걸 보면 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나 보다. 일종의 기부를 독려하는 캠페인이었는데,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현금, 연탄, 라면, 옷, 쌀 등 등. 그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라면 기증이 적절하다는 안내에 그러겠다고 짧은 대답을 하고 기부 날짜를 정했다.
사실 어디 앞에 나서서 내가 한 일 자랑하는 성격이 되지는 못하지만, 뜻깊은 소식을 홍보해야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늘 어색하다.
행사 당일에는 어찌해서 오른쪽 엄지 손가락까지 세워서는 '따봉'을 그리며 사진 촬영을 마쳤다.
사진 촬영을 마친 후 동장님을 포함, 몇 명의 관계자까지 모여 잠시 차담을 가지는 시간이 있었다. 사전에 나에 대한 대략의 정보를 들으셨는지 직원 중 한 분이 동장님께 '작가 활동을 하는 분'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작가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지역 내외 공모전에 글을 공모, 수상한 이력과 상금을 이번에 기부하는 데 사용했으니 그분들에게는 '작가'로 소개하기가 편했을 지도.
다만 손 발가락 모두 오그라드는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이렇다 할 책 한 권 출간한 적도 없는 내가, 작가라는 거창한 칭호를 받는다는 건.
이제는 내년 공모전을 미리 준비 중에 있다. 이미 써놓을 글, 습작으로 끄적였던 흔적을 정리하는 일이지만 한 겨울에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귤 까먹으며 과거의 내 기억을 짚어보는 일이 꽤나 즐겁다.
마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아서 화가 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일기장에 힘을 주어 낙서를 남긴 흔적이라던가, 횡단보도에서 가만히 서 계시던 치매 할머니를 반대편까지 안내했던 일, 인권 강사로 백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강연했던 기억, 2년 동안 독서모임을 진행하면서 남겼던 글까지.
지금 와 읽어보면 '내가 이랬었나' 싶을 때도 많다. 혼자 웃고, 울기도 했었던 날의 기록. 이 모든 시간을 모아 또 다른 글을 이어가는 중이다.
비록, 망작에 가까운 내 글을 여러 공모전에 제출하면서 가끔 '습관성 투고'는 아닐까 하는 스스로의 내부 검열자에게 핀잔을 들을 때도 있지만, 이 습관이 내 삶이 일부가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 일 수도 있고.
어느새 12월의 마지막 주다. 달력 위에 써놓은 수많은 일을 하나씩 살펴보니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동사무소에서 기부 행사를 마치고 돌아서는 나를 불러 세우고는 건네셨던 동장님의 오른손 엄지 손가락의 '따봉' 말이다. 그건 나도 나에게 하지 못한 조용한 응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