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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를 보는 즐거움도, 이제는

by 회색달


(2023년 11월 19일 00시 44분)


반년 전 옥탑방으로 이사를 했다. 방 한 칸에 거실이 분리되어 식탁도, 냉장고도 대용량을 넣을 수 있을 정도다. 구석이 허전해 보여 화분을 몇 개 구해다가 꾸몄다. 요즘 말로 '플랜테리어'라고 하던가.


옥탑방에서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욕망, 이것을 실현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옥상에 방이 있는 곳이 많이 없을뿐더러, 그토록 원하던 넓은 옥상은 더더욱 없었으니까. 내년 여름부터는 넓은 평상을 놓고 직장 동료들을 불러서 맥주 파티를 해볼 계획이다. 텐트도 설치하고, 밝은 전구도 달아 나름의 분위기를 맞출까 한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옥상의 삶’ 이제부터 시작이다.


옥상 생활의 즐거움을 꼽으라면 나만의 정원을 만들 수도 있다. 누구는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기만 한 옥탑방이 뭐가 좋다고 그런다지만 옥상 한쪽에 화분을 놓아 여러 모종을 심어 도시 농부가 되는 재미. 이건 여기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모종 화분에 못 보던 풀 몇 포기가 올라왔다. 뽑으려다가 어디선가 날아왔는지 모를 씨앗이거니 하고 그냥 뒀다. 옥상의 여름은 마치 산속 시골 마을 같다. 종일 햇볕을 그대로 받으니 작물도 쑥쑥 자라지만 잡초도 그만큼 자란다. 며칠 후에 내가 심지 않은 풀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민들레였다. 하나, 둘, 셋, 넷. 화분 개수대로 제자리인 양 차지하고는 곳곳에서 노란 머리를 흔들어댔다.


내가 월세 들어 사는 집에 무임승차한 민들레에는 세를 받지 않는 조건으로 더 활짝 피라는 혼잣말을 하고는 옥상을 내려왔다. 옥탑이라고 하지만 겨우 4층 건물의 꼭대기다. 튼튼한 두 발로 몇 걸음 움직이면 충분히 내려오고도 남을 높이다.


늦게까지 해에 데었는지 하늘이 아직 빨갛게 익어 있다. 아직 버티고 있는 해를 등지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걸어봐야 5분, 몇 개의 건물만 지나면 되는 거리다. 그런데 멀리서부터 커다란 굴착기가 보인다. 무슨 일인가 해서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산책로의 흙을 모두 뒤집어 보도블록을 깔고 있었다. 올해는 발 딛는 그곳마다 들꽃이 한 참이었는데, 이곳도 이제는 도시화되려나 보다.


모두의 마음은 아니었을 텐데, 깨끗한 환경 조성을 위한다는 이유로 만드는 도시화가 아쉽기만 하다. 흙 위로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했던 꽃과 풀의 재회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마음이 아프다. 곧 있으면 딱딱한 돌과 내 발이 마주하겠지.

산책을 나온 이유 중 하나가 공원에 핀 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는데, 공사하느라 뽑히고 밟힌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그 속에서도 머리를 흔드는 녀석들이 보여 뿌리째 뽑아 옥상의 화분에 옮겨 심을까 하다가 포기했다. 들에서 나는 풀은 들에서 나고 자라야 보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는 커다란 도화지 위에 자연이 그려놓은 노란 머리카락 색의 꽃. 나는 민들레의 마지막도, 공사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발길을 돌렸다.


공원을 다시 흙으로 되돌려 놓으면 민들레가 필까? 민들레를 맘껏 볼 수 있는 황금어장을 잃어버렸다. 집 근처 어디를 가야 민들레를 잔뜩 볼 수 있을지 다른 장소를 물색했다. 근처 공원이란 공원을 인터넷에서 싹 다 뒤졌다. 그러나 곳곳이 도시화 공사를 진행하는 탓에 있던 민들레도 모두 쓰러졌다. 봄이면 노란 꽃술을 구경하고, 여름이면 바람 불며 자유롭게 날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도심 속 어릴 적 구경거리가 사라져 버렸다. 집에 돌아가 옥상에 핀 녀석의 민들레라는 이름을 오래도록 불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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