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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커피 한 모금으로 위장을 달래고 노트북을 키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메일 알림이 쏟아졌다.
'또 시작됐다.'
낮은 한숨과 함께 나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한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내 삶은 '비애'라는 단어로 요약됐다. 이어지는 업무, 예측 불가능한 돌발 상황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파묻혀 점점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면, 이 고단함이 언제 끝날까 막막해지기도 했다.
특히 동시다발적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응대하면서 눈앞의 사람과 대화까지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때면, 바쁨은 어느새 불안과 조급함으로 바뀌어갔다.
책상 위 서류더미와 모니터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사이에서 나는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었다.
그럴수록 '버틴다'는 말 대신 '성장하고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며, 이 바쁨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밀려드는 업무 메일, 처리해야 할 보고서, 동시다발적으로 오는 민원.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나는 나만의 평온을 유지하려 애썼다. '모든 시간이 나를 단련시키는 과정이라고, 이 혼돈 속에서 분명 배울 점이 있을 거라고.'
요란한 벨소리가 그나마 잡고 있던 평온을 깨뜨렸다. 익숙한 민원 전화였다. 살짝 긴장했지만, 물 한잔 마시고 수화기를 들었다. "네, OOO팀 백현기입니다." 최대한 정중하고 침착한 목소리를 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첫마디부터 예상 밖이었다. 차분한 문의나 정당한 항의 수준이 아니었다. 고성과 함께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이 귀를 때렸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똑바로 일 안 해?! 당신 같은 인간은 거기 앉아 있을 자격 없어!"
무슨 상황인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내가 한 일의 결과에 대한 설명이나 문의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를 향한 원색적인 비난과 욕설이 난무했다.
순간, 귀가 먹먹해지면서 주변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시끌벅적하던 사무실 풍경도 흐릿해지고, 오로지 전화기 너머에서 쏟아지는 모욕적인 말들만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고, 손에 쥔 펜이 파르르 떨렸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동시에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마치 발가벗겨져 차가운 길바닥에 내던져진 듯한 수치심과 함께, 이유 없이 얻어맞는 듯한 무력감이 밀려왔다.
몇 년 전에도 공황장애를 진단받아 약 먹으며 버텨냈던 시간이 생각났다.
'내가 뭘 했다고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내 존재가 이렇게 하찮은가?' 머릿속으로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애써 부여잡고 있던 '성장', '기회'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은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간신히, 정말 간신히 전화를 끊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 자리에 주저앉고 싶었다. 주변의 동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제 할 일에 바빴다. 나는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고립된 느낌이었다.
방금까지 들었던 욕설과 비난이 맴돌며 나를 괴롭혔다. 아까까지만 해도 분명 '성장의 발판'이라 생각했던 이 바쁜 일상이, 한 통의 전화로 인해 순식간에 나를 짓누르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열심히 하려 할수록 돌아오는 비난은 나 자신에 대한 깊은 자괴감으로 이어졌고, 나는 그 순간, 비애를 넘어선 고통 속에 홀로 서 있었다.
마치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하루를 '버틴다'는 표현 외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압박과 혼란스러움이 단순히 나를 괴롭히는 '비애'일뿐일까? 혹시 이 모든 상황 속에 숨겨진 다른 의미는 없을까?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어쩌면 고통을 회피하려는
자기기만일지도 모른다는 차가운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조금만 달리해보기로 했다.
이 압도적인 순간들이 나를 부서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바꾸자 마법처럼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전화벨은 미친 듯이 울리고, 사람들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하지만 전에는 그저 '아, 망했다!' 싶었던 순간들이 이제는 '자, 여기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러 정보가 쏟아져 들어올 때, 우선순위를 빠르게 파악하는 능력이 길러졌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도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스트레스 관리 능력도 조금씩 향상되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버티는 것과는 달랐다. 나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혼돈'을 성장의 기회로 삼기 위한 작은 노력들을 시작했다. 바쁜 상황일수록 심호흡을 하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였다. 여러 요청이 들어올 때, 급한 일과 중요한 일을 구분하는 나만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리했다. 각각의 상황에 맞는 응대 방식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효과가 없는 듯했지만, 반복될수록 실제로 업무 효율이 높아지고 마음의 평온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 마치 근육을 키우듯, 혼돈 속에서도 중심을 잡는 능력을 훈련시키는 느낌이었다.
물론 여전히 하루를 '버텨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도 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선의 변화다. 더 이상 일상 속 바쁨을 단순한 고난이나 비애로만 여기지 않는다. 동시 전화와 대면 업무의 폭격 속에서 느끼는 그 불안과 조급함조차도, 이제는 내가 멀티태스킹 능력을 기르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침착하게 대처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귀한 훈련 과정이라 생각한다.
매일의 작은 도전들을 통해 나는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루를 버티는 것이 아닌,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것. 쉽지는 않지만, 이 새로운 관점 덕분에 나의 일상은 더 이상 회색빛 비애가 아닌, 성장의 기록들로 채워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닥치든, 나는 그 속에서 기회를 찾고 기꺼이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