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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나를 다시 시작한다.

3.[부딛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by 회색달

아침 여섯 시, 시끄러운 스마트폰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곧 있으면 테니스를 시작한 지 만 1년째 된다. 남들은 어떻게 새벽에 일어나는지, 피곤하지 않는지 묻지만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매번 '5분만'이라는 유혹에 넘어가느라 레슨을 받기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5분, 10분 전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휴일인데, 일이 생겼다고 할까.'

그래도 주 두번 뿐이니, 꾹 참고 일어났다.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곤 했다. 똑같은 스윙을 수십 번 반복하며 라켓이 찢어질 듯 팔을 움직일 때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이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어쩌면 이 불안은 끝없는 반복에서 오는 권태감이었을 터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아니, 오히려 그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 더욱 힘차게 라켓을 휘둘렀다.


밤이 되면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하얀 화면 위로 검은 글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매일 밤 같은 양의 글을 쓰고, 고치고, 다듬는 과정을 몇 달 동안 반복했다. 글쓰기는 마치 고독한 싸움과 같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고, 문장 하나를 완성하는 데 몇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 헤매듯, 끈질기게 글쓰기를 이어갔다.


직장에서 중요한 회의가 잡히면 어김없이 발표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왔다.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혹시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제 나는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다.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새벽 테니스로 땀을 흘리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명상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찾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풀고,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정리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사람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썼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내가 싫어진 건 아닐까?’, ‘작은 다툼에도 이별을 통보하지는 않을까?’ 불안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녀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내 할 일을 한다. 테니스를 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깨닫는다. 인연은 억지로 붙잡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절인연이라는 것을.


어느 날 문득,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새벽의 테니스 연습은 단순히 스윙 자세를 교정하는 것을 넘어, 내 안의 불필요한 감정을 털어내는 시간이 되었다. 밤의 글쓰기는 텅 비어 있던 머릿속을 새로운 생각으로 채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주었다. 불안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더 이상 나를 잠식하지 못했다. 오히려 불안은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나는 이제 안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불안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는 불안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불안을 즐겨야 한다. 불안을 동력 삼아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불안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미래의 막연한 마음상태가 아니다.
지금, 내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확신은 공짜가 아니다. 불안에 도전하고, 스스로 만든 외로움과의 싸움을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갈 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진리이며, 한 걸음씩 내딛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자격이다. 그런의미로 나는, 오늘도 라켓을 든다. 팔이 아파도 친다. 글이 안 써져도 앉는다. 흔들려도 괜찮다. 나는 간다. 조금씩 나라는 사람의 모양을 만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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