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열심히'라는 단어에 갇혀 살았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 이 말들은 마치 삶의 진리처럼 내 안에 깊숙이 박혔다. 공부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심지어 쉬거나 놀 때조차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았고, 실패할 것 같았고, 가치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열심히'라는 단어가 주는 모호함과 부담감에 지쳐갔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열심히' 하는 걸까?
' 밤새 책상에 앉아 눈이 빠지도록 책을 보면 열심히 하는 건가?'
주말도 반납하고 코피 흘리며 일하면 열심히 사는 건가? '열심히'라는 단어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 대신, 끝없는 노력과 희생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기준은 늘 남에게 있었고, 스스로에게는 가혹했다.
'열심히'의 정의를 찾고, '열심히' 할 방법을 고민하는 동안 정작 시작조차 못 하거나, 시작했더라도 금방 지쳐 나가떨어지곤 했다. '열심히'라는 부사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멈춰 세우는 족쇄가 되었다.
문법적으로 '열심히'는 부사였다. 문장에서 단어들이 하는 역할을 생각해보면, 형용사는 명사를 꾸며주며 그 명사를 더 생생하고 '빛나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꽃'이라는 명사에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면 '아름다운 꽃'이 되어 꽃의 이미지가 훨씬 풍부해졌다.
하지만 부사는 달랐다. 부사는 주로 동사를 꾸며주며 행동의 방식이나 정도를 나타냈다. '공부한다'는 동사에 '열심히'라는 부사를 붙이면 '열심히 공부한다'가 되는데, 여기서 '열심히'는 공부하는 행위를 꾸며주지만, 정작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열심히' 하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여전히 모호했다. 빠르게 하는 것인지, 오래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집중해서 하는 것인지,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달랐다.
더 중요한 것은, 부사는 문장의 필수 성분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는 공부한다"라는 문장은 '나'라는 주체가 '공부한다'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 이미 의미가 완전했다. 여기에 '열심히'라는 부사를 덧붙여도 문장의 핵심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 즉, '열심히'라는 부사는 쓰지 않아도 문장은 성립했고, 의미 전달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
글쓰기에서도 부사를 너무 많이 쓰면 문장이 지저분해지고 핵심 의미가 흐려진다고 배웠다. '매끄러운 글쓰기 팁 중 하나가 부사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어쩌면 삶에서도 '열심히'라는 부사를 덜어낼 때 더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흐름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필요한 수식어를 걷어낼 때 문장이 명료해지듯, 삶에서도 '열심히'라는 수식어를 걷어낼 때 비로소 '나'라는 주체가 '한다'는 행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열심히'라는 모호한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한다'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열심히 하다'와 '그냥 한다'는 뭐가 달랐을까? '열심히 하다'는 보통 '잘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 같은 거창하고 무거운 전제 조건들이 덕지덕지 따라붙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 무게에 짓눌려버리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글을 쓰고 싶을 때 '열심히 써야지'라고 생각하면, '어떤 주제로 쓸까?',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다른 작가들처럼 멋지게 써야 할 텐데...' 같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아이디어만 수십 개 떠올리다 한 글자도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열심히'라는 부사가 '쓴다'는 동사를 꾸며주려 했지만, 그 모호한 기준 때문에 오히려 '쓴다'는 행위 자체를 방해하는 꼴이었다.
반면에 '그냥 한다'는 그런 거창한 전제 없이 오직 '행동'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일단 해보자', '시작해보자'는 가볍고 단순한 마음이었다. 글을 쓰고 싶을 때 '그냥 써보자'라고 생각하면, 주제가 뭐든, 잘 쓰든 못 쓰든 상관없이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 문장이나, 떠오르는 단어 아무거나 적어 내려갔다. '그냥'이라는 말은 '한다'는 동사에 어떤 특별한 기준이나 조건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게 했다.
나이키의 유명한 슬로건 "Just do it"처럼 말이다.
"Hard do it"이라고 하면 뭔가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열심히 해!' 보다는 '그냥 해!'가 훨씬 가볍고 실행 가능하게 다가왔다. 'Just do it'이 곧 '그냥 한다'는 의미였고, 이것이 바로 재미와 성공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냥 한다'는 것은 무기력하게 대충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필요한 힘을 빼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일단 시작하는 용기였다. '열심히'라는 부사가 없어도 '한다'는 동사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다.
왜냐하면 '그냥' 일단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반복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툴고 재미없을 수 있었다. 글쓰기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문장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운동도 처음에는 힘들고 몸이 뻐근했다. 하지만 '그냥' 매일 조금씩이라도 계속 하다 보니 익숙해졌고, 익숙해지니 능률이 올랐다. 글 쓰는 속도가 붙고 표현이 자연스러워졌다.
운동할 때 숨이 덜 차고 몸이 가벼워졌다. 능률이 오르자 작은 성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성과가 쌓이니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으며 뿌듯함을 느끼고, 운동 후 개운함을 느끼는 것. 그 작은 성취감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그 성취감이 반복되면서 결국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것이 바로 성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시작점은 '열심히 해야지'라는 무거운 다짐이 아니라, '그냥 해보자'라는 가벼운 마음이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열심히'라는 부사가 없었기에 오히려 '한다'는 동사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반복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었다.
자연을 보며 나는 '그냥 함'의 미학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저 하늘의 구름은 '열심히' 흘러가지 않았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기압 차이에 따라 흘러갈 뿐이었다. 바람도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불어야겠다고 애쓰지 않았다.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그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불 뿐이었다. 강물도 그랬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열심히' 흐르지 않았다. 중력에 이끌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었다.
우리는 바람이 불 때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꽃잎이 흩날리는 걸 보며 '와, 자연은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구나' 하고 감탄하곤 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해석일 뿐이었다. 나무는 바람에 맞서 '열심히' 버티는 게 아니라, 그냥 바람이 부니까 몸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꽃잎은 '열심히' 날아가는 게 아니라, 그냥 바람에 실려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연은 그저 자신의 본성에 따라 '그냥' 존재하고 움직일 뿐인데, 우리는 자꾸 거기에 '열심히'라는 인간적인 의미와 노력을 투영하려고 했던 것이다. 자연은 그저 '있음'과 '흐름' 그 자체로 완벽했다. '열심히'라는 부사가 없어도 자연의 '흐른다', '분다', '존재한다'는 동사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아름다웠다.
이처럼 삶에서도 '열심히 하는 것'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냥 한다'는 태도가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열심히'라는 부사는 나를 멈칫하게 만들고 완벽을 추구하게 해서 시작조차 못 하게 만들었지만, '그냥 한다'는 동사는 일단 나를 움직이게 했고 그 움직임 속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게 해주었다. 부사가 없어도 문장이 성립하듯, '열심히'라는 수식어가 없어도 삶의 행위들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었다.
유명한 월트 디즈니가 남긴 말이 비로소 가슴에 와닿았다.
"The best way to get started is to quit talking and begin doing."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말하는 것을 멈추고 행동하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명언은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만 하거나 머릿속으로 계획만 세우는 것(talking)을 멈추고, 일단 몸을 움직여 행동하는 것(doing)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확히 짚어주고 있었다. '열심히'라는 부사 뒤에 숨어 시작을 미루는 대신, '그냥 한다'는 동사처럼 일단 시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재미, 능률, 성과, 성취, 그리고 성공으로 가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깨달았다. '열심히'라는 모호한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한다'는 단순한 행위에 집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발전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열심히'라는 부담감은 내려놓았다. 대신 그냥 해보기로 했다. 쓰고 싶다면 '열심히' 쓰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한 문장이라도 써보기 시작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그냥' 손가락을 움직였다.
운동하고 싶다면 '열심히' 운동 계획을 세우기보다 '그냥' 나가서 걷기 시작했다. 5km든 10km든, 그저 '그냥' 걸었다. '그냥 함' 속에 숨겨진 마법 같은 힘을 믿기로 했다.
'열심히'라는 부사가 사라지자, '한다'는 동사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행위 자체가 주는 즐거움과 의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삶은 '열심히'라는 부사로 꾸며야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는 동사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수식 없이, 그저 존재하고 흐르는 자연처럼 말이다. '열심히'라는 부사는 이제 내 삶의 문장에서 과감히 지워버려도 괜찮은 단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