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휘어지는 자리
금요일 오후
비 그친 골목을 걷다가
고인 물에 비친 발끝에
오늘 하루를 꺼내본다.
잘한 건 없지만
딱히 망가진 것도 없으니까.
차 한 대가 지나간다
쏴— 하고 비린내를 남긴다
그 냄새가 어쩐지
오래된 기분 같아
한참을 멈춰 선다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은 하늘덕분에
마음까지 뜯겨 나간 기분.
기묘하게 시원하다.
시원해서 서늘하고
서늘해서, 조금은 슬프다
그럴 때가 있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딘가 살짝 비어 있는 기분.
그래서 나는 걷는다.
이 거리의 계절에 맞춰서
내 마음의 속도를 찾기 위해.
그러다
잠깐 바람에 눕는다
천천히, 고요히.
그대로 누워 있어도 괜찮은 날
다시 일어서는 풀잎을 떠올리며.
나에게, 걷는 건
결국, 나를 지나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