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휘어지는 자리
가로등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늘 역시 파란 것도, 회색도 아닌 그 사이.
그런 날은 뭐든 흐릿하다.
사람 마음도 그랬다.
공원 한쪽, 자판기 앞에 서서
주머니 속 천 원짜리 한 장을 바로 꺼냈다.
이미 선택지는 정해져 있었다.
달칵, 버튼 누르는 소리는
오늘 같은 하루에 딱이었다.
툭—
둔탁한 소리에
캔 하나를 얻었다.
바로 옆 벤치에 앉았다.
벌레 한 마리가
자판기 불빛으로 날아들었고,
나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았다.
말을 걸어주는 것도 아니고,
위로한다는 티도 안 내는데,
괜히 옆에 있어주는 듯.
어떤 날은 사람이 그립다.
진짜 보고 싶은 사람 말고,
그냥 같이 있어주는 사람.
같이 있는 데도
아무 말 없어도 되는 사람.
묻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고,
그냥 옆에 조용히 지키고 있는.
자판기 불빛이 꼭 그런 느낌이었다.
괜찮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나쁘다는 눈치도 안 준다.
그냥 거기, 불 켜고 있는 것.
처음 생각보다
조금 더 오래 기대 있었다.
큰 기대는 아니고, 그냥
기대고 싶은 마음 정도가 희미해질 만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