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이었나, 허리 아래쪽 어딘가에 손끝에 걸리는 작은 것이 생겼다. 혹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통증도 없었고, 외관상 별다른 이상도 없어 ‘그냥 지나가겠지’ 싶었다. 사람 몸에 사소한 일탈 정도는 흔한 일이라 생각했다.
병원에 가보려는 시도는 자꾸 미뤄졌다. 회사 일이 바빴고,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귀찮음’이란 감정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몸보다 일이 더 중요한 것처럼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처음 좁쌀 같았던 혹은 손가락 마디만큼 커졌다. 결국 오늘, 병가를 내고 가까운 외과를 찾았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의사는 혹을 보는 순간 조용히 얼굴을 찌푸렸다.
"이 정도 될 때까지 불편하지 않았나요?"
의사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함께 옅은 꾸중이 섞여 있었다. 마치 ‘왜 이제 왔냐’는 말처럼 들려, 나는 민망하게 웃으며 "통증이 없어서요"라고만 답했다.
"간단히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국소마취 후 혹을 도려내고 봉합하는 데 채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섯 바늘을 꿰맸고, 생각보다 빠르고 간단한 과정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런 혹은 대부분 양성입니다. 다만, 간혹 100명 중 3명은 악성으로 확인됩니다. 조직검사를 의뢰하겠습니다.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고, 내 표정 또한 아무렇지 않았다. 마치 이미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네, 검사 잘 부탁드려요”라고 대답했다. 생각보다 덤덤하게 병원 문을 나섰다. 그런데, 문을 닫자마자 알 수 없는 감정이 가슴을 긁기 시작했다. 꿰맨 통증일까. 아니면 불안의 그림자일까.
문득 묘한 감정이 뒷덜미를 툭 건드렸다. 아팠던 건지, 불안했던 건지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잠깐 숨을 삼키는 사이에 '혹시'라는 두 글자가 생각보다 깊게 들어왔다.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무겁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만한 작은 통증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허리를 굽힐 때마다, 땀이 배인 드레싱 위로 작게 스며나오는 통증이 어떤 신호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는 몸에 작은 이상이 생겨도 '괜찮을 거야' 하며 넘기는 편이었다. 대다수 사람처럼, 별일 아닌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왔다. 그래야 하던 일에 지장도 없고, 마음도 덜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것이 쉽지 않았다.
의사의 말이 자꾸 맴돌았다. '100명 중 3명.'
악성일 가능성이 훨씬 낮다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자꾸 그 '3명' 쪽에 생각이 기울었다. 걱정은 논리적이기보다 감정에 이끌리는 경향이 있다.
안정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조직검사는 그저 절차일 뿐이야', '대부분 양성이라고 했잖아', '악성처럼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어.' 이런 말들을 되뇌었다.
그러나 어딘가, 그 말들 속에 진짜 '나'는 없었다. 그것은 위로라기보다 회피에 가까웠고, 평정심이라기보다는 무력감에 가까웠다.
예전에 읽었던 브런치 글이 떠올랐다. 한 여성 작가가 유방에 멍울이 생겨 조직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욕도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나중에 '양성' 판정을 받았을 때, 그녀는 기쁨보다는 '왜 그렇게 무너졌었지' 하는 후회를 느꼈다고 한다.
그 작가는 글의 말미에 이렇게 썼다.
"무서웠다는 감정을 뒤늦게 인정할 수 있었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나는 그 문장을 조용히 내 마음속에 새겼다.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무서울 수도 있는 거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된다. 기다리는 동안 흔들려도 그것이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오늘 이 글을 '상편'이라 부르기로 했다.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이 나는 드레싱을 갈고, 봉합 부위의 따끔함을 조심하며 앉고, 밤에는 생각을 덜 하려고 애쓰고 있다.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기엔, 너무 거창한 일처럼 느껴지고 혼자 곱씹기엔 또 너무 무섭다. 그래서 나는 그냥 기록하기로 했다. 불안을 글로 옮겨두는 것. 내 감정을 객관화시켜 잠시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것.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내 삶에서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기록한다.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감정을,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들을.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걱정한다고 결과가 바뀌는 건 아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는 것뿐이다. 감정을 억지로 누르거나 너무 오래 붙잡지 않으면서. 커피를 내리고, 가볍게 산책하고, 조금 덜 조급하게 숨을 쉬며 이 시간을 천천히 건너가 보려 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무언가를 기다리는 중이라면, 특히 몸과 마음이 동시에 불안정한 시기에 있다면, 부디 자신의 감정을 너무 쉽게 흘려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은 두려움도, 말로 설명되지 않는 초조함도 모두 지금 당신의 일부다. 그 감정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너무 다그치지 말자. '괜찮은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충분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안식처처럼 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후속편을 쓸 수 있기를, '그땐 그랬지' 하며 웃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