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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낯선 고요 속의 채움

by 회색달

아직까지 삶을 뒤흔드는 지독한 고독을 정면으로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다. 외부 자극에 끊임없이 물든 오늘, 고독은 더 이상 혼자의 의미가 아니다. '단절' 혹은 '외면'에 가깝게 들린다.



이유가 무엇일까. 스마트폰 속 SNS,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에 빠져 어느 순간부터 자기 자신과 온전히 독대할 시간마저 빼앗겼기 때문이다.


고독을 '불편한 침묵'으로 느낀 나머지, 잠시라도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초조함에 물들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결국 서둘러 관계와 소음 속으로 기꺼이 들어간다. 도망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렇게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상실한 채, 고독의 참된 의미를 배우지 못하며 시간을 따라 걸어왔을 뿐, 정작 나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 고독은 아직 나에게 너무나 낯설었고,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할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대신 겪을 수 없는 죽음이라는 가장 궁극적인 고독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이 낯선 감정을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 미리 두려워하거나 무작정 회피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마주해야 할 과정이라면, 그 그림자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네는 것이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또한 죽음을 향한 여정에 대한 소박한 준비일 수도 있고.


낯선 고독을 배우는 방법은 의외로 소박하다. 우선 디지털 기기로부터 의도적으로 멀어져 잠시 '멍 때리기'를 실행하는 것이다. 이어폰 없이 홀로 걸으며 발걸음, 바람 소리, 그리고 내면의 감각에 오롯이 귀 기울인다. 종이와 펜으로 내밀한 감정들을 날것 그대로 토해내는 '솔직한 감정 기록'은 고독의 실체를 객관화하는 강력한 도구다. 고독감이 압도할 때는 오감을 활용하여 '지금-여기'에 뿌리내리고, '혼자여서 불쌍해'가 아닌 '혼자라서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기 친밀감을 높여나간다.


이러한 의도적인 노력을 이야말로 고독은 단순한 '혼자 있음'을 넘어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자, 불안 속에서 내면의 평온함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외로움이든 두려움이든, 내면에서 비롯된 감정이라면 이를 부정하기보다 마주함으로써 더욱 단단해지고 깊어질 수 있음을 배우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죽음으로 향하는 동안, 고독이라는 가장 거대한 그림자와 미리 벗이 되어두는 법을 익혀야 한다. 지금껏 회피했던 막막함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온전히 채울 핵심 열쇠임을 깨달으며, 궁극적인 고독 앞에서 삶을 더욱 충실히 채워가는 고결한 자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오늘의 고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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