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지난해 12월, 무려 6개월 동안 아홉 명의 작가들과 함께 공저를 작업했고, 드디어 책이 정식으로 세상에 나왔다. 공저라는 이름 속에 묻혀 있을 수도 있었지만, 표지에 내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감정이 차올랐다. 마치 나라는 존재가 활자로 증명된 것 같은,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그래서 출간기념 강연회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비록 장소는 창원이라 멀었지만, 나는 단번에 손을 들었다. ‘내 책을 직접 소개할 기회가 생겼는데 어찌 그냥 넘어가겠는가.’ 그 마음 하나로 기꺼이 먼 길을 준비했다.
문제는 거리였다. 차를 몰고 가도 다섯 시간 반은 족히 걸렸고,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면 거의 일곱 시간은 족히 잡아야 했다. 그래도 마음은 들떴다. 긴 여정 끝에 만날 청중, 그리고 내 글을 직접 소개할 순간을 상상하면 피곤함 따위는 사소하게 느껴졌다.
행사 당일은 11월 말의 차가운 날씨였다. 늦가을의 바람이 매섭게 불었고, 하늘은 잿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목도리를 단단히 두르고 길을 나섰지만, 뺨에 와 닿는 공기는 날카로웠다. 그럼에도 차창 사이로 스며드는 햇볕은 묘하게 따뜻했다. 햇살이 건물 사이로, 터널을 빠져나올 때마다 순간순간 내 얼굴에 내려앉았다. 히터의 인공적인 열기와는 달리, 그 빛은 잠시지만 살아있는 온기를 전해주었다. 나는 문득 그 생각을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햇볕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차갑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마음을 녹여주는 존재 말이다.
강연 장소에 도착했을 때, 나는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강당을 둘러보았다. 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었다. 무대 앞에는 작은 단상이 놓여 있었고, 의자들은 반듯하게 줄지어 있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섯 명의 작가들이 교대로 약 10분씩 무대에 설 예정이었다. 나 역시 퇴근 후 몇 날 며칠을 PPT를 만들며 준비해왔기에,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리에 앉아 보니 눈에 띄게 비어 있는 의자가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기대와 달리 관객은 여덟 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그중 절반 이상이 다른 작가의 가족들이었다. 결국 실제 청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순간, 허탈함이 몰려왔다. ‘이 먼 길을 달려왔는데, 단 한 사람이라니….’ 준비했던 정성과 설렘이 무색해지는 기분이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오히려 담담한 마음으로 단상 위에 올랐다. 앞줄에 앉아 있던 그 한 분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요즘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졌는데 어떠세요?”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저도 목에 스카프를 둘러야 할 정도예요.” 순간, 나는 따뜻한 대화의 온기를 느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제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기차와 버스를 번갈아 타고 왔는데, 건물과 터널 사이로 스며드는 햇볕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 안의 히터와는 또 다른 온기였죠. 저는 언젠가 그런 햇볕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잠시지만 다른 이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그 말을 하자, 작은 강당 안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청중은 단 한 명이었지만, 그 한 사람과 나는 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경청했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강연의 가치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십 명, 몇백 명이 앉아 있든, 정작 마음을 다해 들어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시간은 충분히 빛난다.
행사가 끝난 뒤, 나는 여전히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이상한 충만함이 자리 잡았다. 돌아오는 길에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의 청중은 한 사람이었지만, 그 한 사람에게 온전히 닿았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이 진짜 강연의 의미가 아닐까.’
사람들은 종종 큰 무대와 많은 박수갈채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나는 그날의 경험으로 조금은 다른 진실을 알게 되었다. 성공은 수치나 규모가 아니라, 누군가와의 진심 어린 연결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햇살이 터널을 빠져나올 때 얼굴에 스치는 순간의 온기처럼, 짧지만 확실한 울림이 남는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날 이후, 나는 강연이나 글쓰기, 나아가 인간관계까지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숫자와 겉모습에 흔들리기보다, 단 한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많은 독자가 내 글을 읽어주면 좋겠지만, 설령 단 한 사람이라도 그가 내 글 속에서 작은 위로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돌아보면, 창원의 그 강연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게는 잊을 수 없는 배움의 순간이었다. 숫자의 실망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했고, 기대와 현실의 간극 속에서 뜻밖의 메시지를 얻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다짐한다. ‘누군가의 삶에 잠시 스며드는 햇볕 같은 사람이 되자.’
그날의 강연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마도 그것이 글을 쓰고, 무대에 서고, 사람들과 나누는 이유일 것이다. 언젠가 다시 강연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할 것이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단 한 분이라도 제 이야기를 통해 작은 온기를 느끼셨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게 나에게도,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어준 단 한 사람에게도, 그날은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