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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지막 여행기술

14[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by 회색달


Ai 시대, 최첨단, 유례없는 기술력.

지구 어디든 닿을 수 있었던 인간의 손길.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한밤의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혼자 오래 앉아 있던 그날을.

별빛이 잔잔히 바다에 흩어지고,

바람이 내 숨결과 섞여 흘러가던 순간을.


그때 나는 알았다.

책에서도, 연구실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던

인간의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이

이미 내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시를 쓰곤 했다.

그것은 작은 파도처럼

내 마음을 스쳐 지나가며

숨겨두었던 기억과 상처를 드러내주었다.


사랑과 연민의 파도는

내가 쌓아 올린 모래성을 허물지 않았다.

대신 그 둘레를 부드럽게 감싸며

조금씩 바다와 이어주었다.

모래사장은 점점 더 넓어졌고,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처럼

내 마음의 경계도 확장되었다.


그리고 나는 배웠다.

파도는 밀려왔다가 물러나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 잔잔한 숨결 속에서,

나의 마음 또한

조용히 넓어지며

자기 안에서 끝없이

여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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