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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an 24. 2024

아버지의 걸음

나도 아파보니까 알겠다.

최근 몇 일째 제대로 펴지지 않는 허리 때문에 제대로 잠도 못 이루고 불편한 날 이 많았다. 더 이상은 참기 힘들 것 같아서 사무실에 연락을 남기고 바로 인근 신경외과를 찾았다.

어렸을 적부터 '또래 보다 머리 하나 크네'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허리며 무릎 등 관절이 유독 약해서 병원을 자주 다녔다. 1~2년 간격은 두고 양팔  팔. 다리가 골고루  한 번씩은 골절되어 입원했던 적도 있었다.

 성장통이라고 생각하며 참고 왔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괴롭히는 관절 통증에 식은땀에 잠을 못 이루니 그 고통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거다.


허리 통증의 이유는 디스크. 이제 나이 마흔도 안됐는데 관절 부분이 약하단다. 평소 올바르지 못한 자세 및  생활습관까지, 이게  딱 그 이유다 싶으면 쉬울 텐데, 몸이라는 건 그렇지가 않다는 의사 말에 답답했다.

 혹시나 평생토록 통증을 달고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까지 들었으니까.  의사말로는 아직 수술 단계는 아니니까 신경 관련 주사 정도로 하고 입원 후 일주일 정도는 휴식하는 편이 낫겠다는 진료를 내줬다.


4층의 입원실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올라가야 했다. 마침 문 밖에 기다리던 간호사 한 분이 어디서 가져오셨는지 바퀴 달린 의자를 하나 나에게 들이밀었다. 상냥한 웃음과 함께.

왠지 모를 창피함은 미뤄두고,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붙였다. 진료 대기 중인 환자분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복도를 지나는 기분이란, 순간만큼은 통증보다 왠지 모를 쑥스러움이랄까.


''

덕분에 입원실까지 편하게 왔지만 병실 특유의 냄새에 잠시동안 숨쉬기가 힘들었다. 얇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미세한 약품 냄새와 사람들의 땀 냄새, 방금 소독을 마쳤는지 병실 바닥에 남은 물걸레 질 흔적까지. 마지막 입원을 언제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데, 낯 선 이곳에서 일주일 이상을 있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답답하다.


나도 그렇지만 30년 전쯤,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2학 때,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 당시 매일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하느라 주말이나 비가 오는 날이 아니고서는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던 아버지.

 워낙 시골이다 보니 주변 내 또래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아버지 나이에도 흔한 술친구 하나 없던 것 같다. 쉬는 날이면 혼자 술을 드시거나 근처 강가로 조용히 낚시를 다니셨던 걸 보면.


 비가 내리던 그날도 낚시를 다녀오겠다며 아침부터 집을 나선 아버지는 병원에서 다시 만났다. 지나가던 승용차가 전방을 제대로 보지 못해 길가로 비켜선 아버지를 친 것이데, 하필이면 허리 쪽이라 그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실려왔다는 말에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얼마나 딴짓을 했으면 그 길에서 사람을 쳤을까.

 그렇게 아버지의 병원 신세는 한 달이 넘도록 됐고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  매일 집대신 시내 병원으로 향했다. 핑계야 아버지 옆에서 있는다지만 침대 밑에 있는 과일이며 과자는 더할 나위 없는 유혹이었고 막차 시간이 되기까지 병실 티브이를 차지하는 호사도 누렸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편하게 누워 시간을 보냈으리라.


 아버지와 추억은 내 이름이 붙여진 침대에 누우면서 더 떠올랐다. 시간과 공간이 한참이나 다른데, 발을 쭉 뻗으면 낙상 방지 턱에 걸리는 침대에 누운 다 큰 아들이라니, 차마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는 못 드렸다. 코로나 상황에 면회도 어렵지만 멀리 생업으로 종일 운전만 하시는데 또 얼마나 걱정하실까 생각하니 번호가 쉽게 눌려지지 않은 건, 밑에서부터 오는 통증 때문일 거다. 입원 첫날 밤에는 진통제를 몇 번이나 맞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으니까.


둘째 날 아침, 어제 입원실 침대까지 동행해준 간호사가 다시 들어왔다. 반가운 얼굴, 어제 와 똑같은 표정으로 '환자분 여기 앉으세요'라며 침대 바로 앞까지 휠체어를 대는 모습에, '이제 시술실 들어가는구나.'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2층, 시술실에 들어섰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에어컨을 틀어놓은 듯한 기분, 수술실이야 멸균목적으로 기온을 낮게 유지한다는데, 간단한 시술실인데도 문을 열자마자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차가운 철제 위에 흰색 레자로 포장된 침대, 크기가 내 키보다 작아서 발이 밑으로 한 참 삐져나왔다. 엎드린 내 등 뒤로 '따끔합니다'라는 멘트에 깊숙이 들어오는 얇은 주삿바늘이 느껴진다. 이윽고 차가운 주사 용액이 척추 신경을 따라 퍼지는데,  의사의 말 한마디마다 묵직한 혹 덩어리가 허리에 달리는 기분이다.


10여분 동 안 찌른 주사 횟수는 대략 스무 번 남짓, 처음 몇 번은 셀 수 있었는데 열 번 정도가 지나는 순간부터는 허리아래부터 감각이 없어져 맞는지도 몰랐다. 이윽고 찾아오는 어지러움증과 두통. 의사 말로는 괜찮은 상태라며 오늘 밤까지는 통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상현상이 아니니까 안심해도 된다는 말에 한 결 마음이 편했다.


내 기억에 그날 밤이 그동안 느꼈던 통증 중에서 가장 아팠던 때다.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나아졌다 심해졌다 하는 통증, 누가 바늘로 나 밉다고 콕콕 찌르는 느낌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이틀째 밤을 보냈다.


침대에 한 번 누우면 일어나기도 힘든데, 하필이면 소변이 마렵다. 30년 전 아버지가 입원하셨던 날 새벽마다 용변을 보고 싶어도 거동이 불편해서 소변통을 간호사분들이 가져다준 기억이 났다. 그렇다고 이 새벽에 호출벨을 누르기에는 뭔가 미안한 감정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 까지는 20여 미터, 보통이라면 몇 걸음에 다녀올 텐데 자꾸 다리가 땅에 붙어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아마도 허리통증과 주사약 효과일 테지. 한 참 동안 벽을 짚고 움직여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이번에는 30년 전 이 아니라 불과 몇 년 기억이 떠오른다. 사고 후유증인지 허리가 아프시다며 한 동안 병원을 다니셨는데 나는 멀리 직장에 있다 보니 휴가 때 몇 번 을 모셔다 드리지 못했다. 지금 옮기는 걸음마다 그때 기억은 왜 이리 선명한 건지 모르겠다.


열흘 후, 통증이 한 츰 가라앉은 덕분에 퇴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일하는 시간 일 텐데도 옆지기가 점심시간이라고 나와서는 옆에서 부축했다. 한 걸음, 두 걸음,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다시는 이런 아픔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면서도 몇 년 전 아버지의 등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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