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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an 24. 2024

1970년도의 메모

아버지의 기록


오래전 일이다. 이제 막 직장에 입사하여 고향을 떠나 있었는데 '언제 오느냐'라는 부모님 성화에 휴가를 내어 본가에 내려왔다. 가족이라고는 부모님 두 분과 나, 셋이 전부인지라 하나가 떨어지니 빈 곳이 크셨나 보다.


두 분 모두 각자의 생업을 따로 두고 계시고 있었던 때라 휴가를 내어도 저녁 시간을 빼고는 마주 앉아 얼굴 보며 밥 한 숟가락 뜨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내가 일주일을 통으로 비워 내려온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아버지께서 틈틈이 적어놓은 메모지를 타이핑해달라는 주문과 더 나이 먹기 전에 자신이 써놓은 일기를 정리해야겠다는 아버지의 말씀 때문.


 '아니, 뭐 그렇게 중요한 내용을 적어놓으셨다고, 그냥 깨끗한 종이에 옮겨 적으시면 될 것을. 그리고 일기야 말이 좋아 일기지, 거실 벽에 걸린 달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 종이를 정확히 3번 꾹꾹 눌러 접어 그 달에 있었던 일을 적어놓은 게 전부가 아닌가.'


사실이었다. 세 식구 살기 딱 적당해 보이는 방 세 칸 아파트에는 다른 집 보다 유독 달력이 많았다. 티브이 옆으로, 맞은편 거실 벽으로, 주방, 안방, 작은방, 내 방, 하물며 화장실까지.

 처음 공장에서 나온 모양 그대로 돌돌 말려  비닐 조차 뜯지 않은 건 베란다에 박스째로 남아 있는 것도 있었다.

 문제는  해마다 새 달력이 나올 때 즈음이 되면, 어디서 구하셨는지 기존에 있었던 박스 위에 또 하나를 올려 쌓아 둔다는 것.

그렇게 우리 집은 달력 부자가 된 지 오래였다.

 한 번은 참다못해 아버지 앞에서 '노트를 하나 구매하면 될 일을 굳이...'  한 마디 하려다가 참았다.

 하루 이틀 적어온 글이 아니었고, 적어도 내 기억 속 지난 달력 속의 메모는 아버지만의 세월의 기록이었을 테니까.  방식 이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그건 아버지만의 보물 같은 존재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베란다를 바라보고 있는 책상 앞에 앉았다. 일일이 세기도 힘든 양이라 우선 손에 잡히는 대로 몇 장씩 집어 들어 각이라도 맞출 생각에 바닥에 ' 탁탁 '쳤다.일부는 노랗게 바래 그 위에 다른 종이를 덧대어  모았다.

날짜를 보니 1970년도의 가을, 그건 내가 태어나기도 전, 고등학생 때의 아버지의 메모였다.

 '벌써 40년도 더 된 그날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평상시에도 옥편이 거실에서 가장 손이 닿기 쉬운 곳에 있을 만큼 한자를 즐겨 쓰시던 분이라 그런지 학생 때에도 똑같아 보였다. 내가 알아보기 힘든 한문이 가득이었다. 아버지의 어린 시절은 부유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어쩌면 교과서라도 베끼어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한 장씩 써 놓고 애지중지했을 모습이 그려졌다.


 몇 장을 더 포개어 대강의 책 등을 세웠다. 이대로 구멍을 뚫어 두꺼운 링을 끼워둘 생각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종이가 두꺼워져 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과정에서 아버지의 메모에 실린 시간을 생각해 봤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간다는데, 어느덧 지금의 내 나이가 메모 속 아버지만큼 이 되어있었다. '아버지에게 메모란 시간을 어떻게든 느리게 보내고 싶은 노력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종이 일지 모르겠지만 종이가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동시에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 집에 자주 내려오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어 아버지께 보냈다. 이 내  '고맙다'라는 답장이 왔다. 그동안 몇 번을 자신을 도와달라는 말을 못 들은척했던 시간을 반성해야겠다. 긴 휴가가 오늘따라 짧게 느껴진다. 서둘러야겠다. 아버지의 시간은 더 짧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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