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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an 25. 2024

짝짝이 양말을 신은 날

아버지의 택배


 늦잠을 자느라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평소 같으면 어젯밤 침대에 들기 전 아침에 입을 옷과 양말을 준비했을 텐데 어제는 그러지 못했다. 며칠째 낫지 않던 감기 증세가 심해서인지 그 핑계로 일찍 잠자리에 누워 스마트폰 세상을 구경하다가 도리어 늦게까지 잠을 설친 까닭이었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양말을 꺼내 신었다. 준비를 마치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는데, 운전대 밑으로 보이는 양말 모양이 짝짝이다. 한 짝은 검은색 바탕에 발목을 감싸는 흰 줄이 두 줄, 한 짝은 아예 검정. 아마 서랍에서 색을 보고 꺼내느라 못 봤나 보다. 다시 올라가 바꿔 신을 시간은 없다. 페달에 올린 발을 바꿔가며 가기도 바빴다.


 하필 출근 시간이라 교차로 중간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데 이 상황이 웃겼다. 머리는 말리기를 포기해서 모양이 아파트 계단을 달려 내려오느라 맞은바람 모양 그대로였고 양말까지 짝짝이 었으니. 내가 봐도 어이가 없어 중간중간 거울을 보며 머리 정돈을 했다.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한 회사 앞. 자동차 문을 열기 전 짝짝이 양말을 보다가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친한 친구, 가족이 모여 있는 채팅방에 사진을 올렸다. 창피한 것보다는 아침부터 한 번 웃어넘겼으면 됐다 싶었다.


 얼마 전 인권 강의안을 만들며 한 페이지를 유독 공을 들였다.' 인권은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라는 말은 자주 했는데, 그럼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지금껏 내가 배운 교과 내용으로 정리하자면, 3가지다. 관심, 고정관념의 틀에서의 탈피, 끝으로 공감이다.

 사실 나에게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헬스장에 갔다가 양말 모양이 서로 다른 걸 코치가 보고 알려주느라 그제야 안 적이 있다. 그땐 '패션의 일부'라며 웃어넘겼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창피했는지, 하필 반바지를 입었으니 더 했다.

 그 걸 알아보는 것도, 알려주는 것도 관심 덕분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땀에 젖은 양말을 벗으려는데, 짝짝이 양말을 보니 아까 상황이 생각나 혼자 슬쩍 웃어넘겼다.

  아버지께서는 챗팅방에 올라온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단다. 다 큰 아들 녀석이 칠칠치 못하게 그러고 다니느냐고 한 소리 들었지만 처음엔 그 속 마음을 몰라 또 웃어넘겼다가 나중에 돼서야 알았다.


 퇴근 후 집 앞에 시키지 않은 택배 박스가 있길래 뭔가 하고 봤더니 집에서 온 거다. 발송자는 어머니다. 전화를 해봤더니 아버지께서 준비하셨단다. 그것도 본인은 신지 않는 값비싼 스포츠 양말이다. 흰색과 검정의 조화로 유명 브랜드의 제품.

"혼자 객지에서 고생한다고, 양말 몇 켤레 사서는 택배로 보내셨어".

바쁘게 지내면 그럴 수 있다. 양말을 바꿔 신을 수 있고, 티를 거꾸로 입을 수도 있고, 차 키를 식탁 위에 두고 내려왔다가 차 앞에서 생각나 다시 뛰어 올라갈 수도 있고... ;

 그런데 누구는 그 모습이 못내 마음 쓰였나 보다. 내가 겪은 짝짝이 양말 신은 날이 누군가의 마음에는 딱 맞는 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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