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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an 25. 2024

별 것 아닌 일

나이를 먹는 중입니다.

 아침 여섯 시 반이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올해부터 아침잠이 많아졌다. 작년에만 하더라도 새벽 다섯 시에 거뜬히 일어나 책도 읽고 커피도 한잔하면서 여유를 가졌는데, 몸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지 오래됐다.

 곧바로 화장실로 가 불을 켜고 아직 눈이 떠지지 않는 얼굴에 찬물을 확 끼얹었다. 몇 년째 지키고 있는 아침 루틴이다. 한 번에 잠을 깨는 데에는 직방이다.

한 번은 방송에 피부 좋은 유명 연예인이 나와 자신은 '눈을 뜨자마자 찬물 샤워부터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저건 미친 짓'이라 혼잣말을 했다.


그런 내가 지금 찬물 세수를 하는 이유는 하나, 나의 글쓰기 스승님 때문이다. 수 십 년째 이어지고 있는 새벽 기상, 독서와 글쓰기. 이 모든 건 찬물 세수 덕분이었다고 하시니 제자 된 입장에서 뒤따를 수밖에.

 손끝이 아프다. 분명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아파트인데, 물 온도는 강원도 깊은 곳에서 군 복무 시절의 느낌이다. 그땐 따뜻한 물은커녕 관이 얼어서 세수도 제대로 못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옛 추억이 됐다.

 찬물 세수를 마치고 로션을 바르는데 오늘따라 눈 가에 주름이 신경 쓰인다. 분명 생긴 지 오래되었을 텐데 지금까지는 눈에 안 띄었는데, 별일이다.


 2년 전 5월, 봄을 핑계로 집 대청소를 했다. 벼르던 안방 침대 위치까지 바꾸어가며 몇 달 동안 손 닿지 않았던 먼지를 쓸었다. 베란다 창도 닦고 에어컨 필터도 꺼내어 닦았다. 마지막 순서는 소파였다. 성인 세 명이 한 번에 앉아도 남는 크기라 부피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는 무슨 용기였는지, 아니면 객기였는지 모르겠다. '하는 김에 이곳도 해야지.'라는 생각뿐이었을 거다.

 소파 한쪽 끝을 잡고 슬 쩍 들었다. 들렸다. 무겁지만 들만했다. 좀 더 들어 옆으로 치워놓고 청소기를 바닥에 넣으려는데 순간 힘이 허리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다.

 '윽....' 그대로 자리에 고꾸라졌다. 옆에 누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놓치는 소파에 발이라도 찧었으면 큰 일이이었을 거다. 아니, 우선 내 허리가 걱정이었긴 하지만....'

 식은땀이 났다. 엎드려 있는데, 별 생각이 다 났다. '어디 심각한 건 아니겠지?' '이러다가 수술하는 거 아닌가?'. 티브이 다이에 놓인 디지털시계의 초침만 봤다. 한 십 분 즘 지나서야 움직일 만했다. 엉금엉금 기어 전화기를 잡고 세 자리 숫자를 눌렀다.'119'


 구급차를 타고 와 응급실 침대에 누웠다. 천장에 누렇게 얼룩진 먼지가 보였다. 조금 그대로 있으니 침대 째 mri로 옮겨졌다.

 이쯤 되면, 창피함은 모르겠고 우선 아픈 것만 해결되었으면 했다. 어찌어찌 누워 원통 모양의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바로 모터 회전하는 소리가 들렸고 검사는 몇 분 안 되어 끝났다.

그간 운동도 열심히 했고 체력만큼은 자신만만했던 나였는데, 꼴이 말이 아니다. 한순간 방심했던 탓 일 것이다. 이런 일을 겪게 되다니, 무슨 일인가.


 응급실로 옮겨져 아까 천장의 얼룩과 다시 만났다.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대로 모양을 바꾸어가며 얼룩과 싸우는데, 갑자기 의사가 둘 사이를 중재하고 나섰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뭐라 말 도 못하고 있는데, 차트를 훑어보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디스크가 많이 손상됐네요. 수술까지는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별것 아닌데, 많이 불편하실 겁니다. 내일 디스크가 튀어나와 있는 부위를 마취하는 주사를 놓을 테니 오늘은 여기서 주무세요."


수술까지는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안도감이 밀려왔지만, 의사의 '별것'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나는 그 '별것' 때문에 이렇게 누워 있는데, 그가 한 말은 비수였다.


"앞으로 최소 반년 이상은 조심하셔야 됩니다. 아직 젊으신 것 같지만 관절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거든요. 나이 어린 사람도 요즘 디스크 수술을 많이 하니까요. 꾸준하게 관리하셔야 될 거예요"


 그랬다. 이제 서른 중반이니까 '괜찮겠지' 했다가 '큰일'을 치렀다. 평소 몸 쓰는 일만큼은 자신 있다고 큰소리치던 내가 후회됐다.

다음 날 의사의 주사 처치를 받고 며칠 입원해 있으니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통증이 나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날의 응급실에서 만난 천장의 누런 얼룩은 자꾸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나이를 먹었다는 걸 제대로 배운 날이었다. 지금껏 기억에 이렇게 아픈 날이 또 없었다.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 기록된 오늘이 살아생전 가장 선명히 기록됐다.


 기억 속 내가 어린 시절의 아버지께서도 병원에 자주 갔다. 공사장에서 일하느라 생긴 여기저기 상처 때문이었다. 한 번은 몇 달을 입원한 적도 있는데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늘 '별것 ' 아닌 일이라며 걱정 말라하셨다.

"일하다 보면 다칠 수도 있고 한 거니까, 너는 학교 가서 공부 열심히 해라."

 학교를 마치고 바로 아버지 병문안을 핑계로 병원을 찾았는데, 며칠 동안 매일 오는 걸 본 아버지께서하신 말이다.

 사실 학원에 가기 싫은 것도 있지만 그때 아버지께서 말 씀 하신 '별것'이 나에게도 똑같은 일 일뿐일 덴데, 나는 왜 이렇게 참기 힘들 정도로 아픈 걸까.

 퇴원하고 나서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입원했다는 말은 아예 안 했다. 그냥 생각나서 했다는 '별것 ' 아닌 말과 ''밥은?' 등의 대화로 간단히 통화를 끝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때의 아버지는 어떻게 아픔을 참아냈을까?. 내가 나이 듦은 아버지와 다른 걸까?. 앞으로도 다치거나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아질 텐데 그때마다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다음 달 휴가 때 아버지께 물어봐야겠다. '어떻게 별것 아닌 일을 잘 보내셨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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