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속에서 낯설게 바라보기: 글감과 친해지는 길
몇 년째 같은 업무를 반복하다 보니, 갑작스러운 상황에 곧바로 대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작은 실수를 이어가다가 어느 날 상사에게 크게 질책을 받기도 했다. 그때 느낀 것은, 내 안에 늘 익숙함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반복 속에서 마음은 안정적이지만, 변화 앞에서는 허둥댄다는 것.
나는 그런 나를 바꾸기 위해 한 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업무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거나, 관심 있는 일이라면 남들이 멈출 때 한 발자국 더 내딛어 보는 것. 그 끝은 자연스럽게 공모전과 경연대회, 세미나 참여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을 찾으려면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야 했는데, 평범한 직장인에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산책을 하면서 스마트폰을 들고 하늘을 찍었다. 지금 아니면 담을 수 없는 구름의 모양, 오늘 스쳐간 바람에 날리는 낙엽, 어제와는 다른 빛깔의 하늘. 사소한 순간을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변화는 늘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면, 내 삶에서도 변화에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 번은 모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에세이 공모전 주제가 ‘나의 일상 속 변화’였다. 처음에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뭘 써야 할지 몰라 며칠을 고민했다. 결국 평소 하루를 쓰기로 했다. 아침 출근길, 커피를 내리는 습관, 점심시간의 짧은 산책. 너무 평범해서 글이 될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그 평범함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 달라지고 있었다.
커피잔 위로 올라오는 김, 길모퉁이의 오래된 간판, 낯선 빛깔의 하늘. 별것 아닌 풍경들이 내 마음 안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결과는 비선이었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글을 쓰는 일은 대단한 경험을 적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로 나는 익숙한 순간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습관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그때부터 내 하루는 느려졌다. 특별한 일을 만들기보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장면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아침의 공기, 창문을 통과하는 빛, 늘 보던 천장까지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눈을 뜨면 늘 보던 천장이 있다. 오래된 도배 위 흰 바탕에 작은 얼룩이 무늬처럼 자리하고 있다. 매일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가끔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아마 내가 다르게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일지도. 익숙함 속에서 새로움을 찾으려는 작은 의지. 글감은 그런 마음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너무 익숙한 것을 잘 보지 못한다. 매일 지나치는 골목, 늘 마시는 커피, 같은 시간의 햇살.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익숙함 속에서 낯선 틈을 발견해야 한다. 한겨울 버스 손잡이에 남은 이전 사람의 온기처럼, 평범한 순간 속에서 작은 이야기를 건져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걸을 때마다 풍경을 조금 다르게 보려고 한다. 일부러 길을 바꾸거나, 속도를 늦춘다. 걸음이 느려지면 시선이 넓어진다. 늘 보던 가게 간판이 조금 더 낡았다는 걸, 나무 가지가 줄었다는 걸 그제야 발견한다.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그것이 글감이 된다. 글감은 발견이라기보다 다시 보기다. 글쓰기를 시작한 뒤로 나는 자주 걷는다. 걸으면 마음이 비워지고, 주변이 들어온다. 그제야 세상이 말을 건다.
나는 오래된 머그컵을 좋아한다. 입구가 살짝 깨져 물을 따르면 작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예전엔 불편했지만 지금은 좋다. 깨진 자리에서 글이 시작되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은 것, 익숙하지만 이상하게 불편한 것, 그 틈이 마음을 건드린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한때 멋진 풍경을 찍으려 애썼지만, 요즘은 별것 아닌 장면을 담는다. 쓰레기통 옆 그림자, 비에 젖은 벤치,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빛. 아무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이야기가 깨어난다.
낯설게 본다는 것은 현실을 의심하는 일이다. “늘 그렇지 뭐”라는 말 속에서 글은 죽는다. 글쓰기는 익숙한 문장을 뒤집는 일이다. 오늘의 하늘이 어제와 다르다는 걸 말할 수 있는 사람, 그게 글을 쓰는 사람이다.
가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글감의 씨앗이 된다. 아무렇지 않은 날의 공기 속에서, 문득 스치는 냄새가 오래된 기억을 깨운다. 어릴 적 장마가 끝난 날 흙냄새처럼, 기억은 느닷없이 문을 연다. 그 안에서 문장이 태어난다.
나는 일부러 낯선 시선을 연습한다. 물건을 거꾸로 본다. 컵을 뒤집어 바닥의 흔적을 관찰한다. 오래 쌓인 물의 무게가 남아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하루가 보인다. 글쓰기는 그 흔적을 따라가는 일이다. 결국 글은 사람의 흔적을 쓰는 일이다.
낯설게 보기의 핵심은 거리를 두는 것이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관계도, 장소도, 자신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다 보면 나와의 거리 조정이 자연스러워진다. 그 거리에서 문장이 생긴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지점. 그게 글감의 자리다.
글쓰기를 떠올리면 흔히 거창한 무언가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의 단어에 ‘시선’을 붙이면 어떨까? 엄마의 시선, 스마트폰의 시선, 남편의 시선, 아침의 시선.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다. 그게 내일의 글감이 된다.
글감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하지만 낯설게 보는 연습을 하면, 어느 순간 조용히 다가온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 눈앞에서 조용히 달라진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 바로 글쓰기가 시작되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