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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카메라

익숙함 속에서 낯설게 바라보기: 글감과 친해지는 길

by 회색달


DSLR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우리는 한쪽 눈을 감는다. 많은 사람이 빛의 양을 조절하거나 구도에 집중하기 위한 기술적 행위로 이해하지만, 그 의미는 그보다 깊다. 사진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한쪽 눈을 감는 행위가 ‘눈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여는 일’이라고 말했다.


찰나의 감정, 스쳐 지나가는 공기, 사람의 표정 변화까지 한 장의 사진에 담아내는 일종의 ‘마음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의 말처럼, 좋은 사진을 만드는 건 최신 장비나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그것을 담아내는 ‘마음’이다. 이 지점은 글을 쓰는 일에도 정확히 닿아 있다. 글감은 ‘무엇을 쓸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 몸과 마음이 어떤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일상과 마주하느냐에서 시작된다. 카메라가 시선의 예술이라면, 글쓰기 또한 시선의 예술이다. 글감은 결국 마음이 머무는 곳에서 자란다.


스물한 살 때였다. 사진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지금처럼 SNS에 정보가 넘쳐나던 시절이 아니었다. 발품을 팔아야 했다. 대학교 근처 미술관에서 열리는 사진 수업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만난 사진작가 K는 늘 한결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카메라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좋은 사진은 카메라 성능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달려 있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가 있어도, 시선이 따라주지 않으면 평생 좋은 사진 한 장 남기기 어렵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기술보다 시선이라는 그의 말이 글쓰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진에 ‘자세’가 중요하듯, 글감에도 ‘태도’가 중요했다. 글감을 찾는 자세는 낯선 시선을 유지하려는 의지다. 익숙함에 매몰되지 않고, 평범한 풍경과 감정의 조각들까지도 유심히 바라보는 집중력이다. 매일 아침 스치는 낡은 간판 하나, 바람에 굴러가는 낙엽 한 장, 책상 위 무심히 쌓인 먼지 한 줌까지도 글감이 될 수 있다.


카메라는 그저 이 모든 것을 포착하는 도구일 뿐, 그것을 발견하는 건 결국 내면의 시선이다. 마치 렌즈로 세상을 프레임 안에 가두듯, 마음속에도 작은 프레임을 띄워 그 안을 바라보는 일. 그 순간, 지루하던 일상이 하나의 캔버스로 바뀐다.


한쪽 눈을 감아 육체의 시선을 잠시 가리고, 마음의 눈을 뜨는 일. 그 순간이 중요하다. 드러난 현상의 표면에서 멈추지 않고, 그 너머에 숨어 있는 시간과 감정, 그리고 그것들을 가능하게 한 보이지 않는 연결을 포착하는 일이다. 사람들의 무표정 속에서 읽히는 삶의 무게, 계절의 공기 속에 스며 있는 미묘한 슬픔, 오래된 골목의 벽에 배어 있는 시간의 흔적. 글감은 멀리 있지 않다. 늘 우리 주변에 있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에, 다만 그것을 좁고 깊게 바라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그 훈련의 이름이 바로 ‘낯설게 보기’다.


나는 그 과정을 ‘걷는 행위’에 자주 비유한다. 걷는다는 건 단순히 몸을 이동시키는 운동이 아니다. 발이 땅에 닿는 감촉,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방향, 사람들의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소리. 그런 것들을 느끼는 일이다. 걸음이 느려질수록 시선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사방으로 확장된다. 빠르게 움직일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매일 지나던 좁은 골목길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 햇볕을 쬐는 고양이. 그 작은 차이들이 시선을 자극한다. 마치 초점을 조정하듯, 내 마음속 풍경이 조금씩 또렷해진다. 그렇게 한 장면 한 장면이 글로 변할 씨앗이 된다.


낯설게 본다는 건 단지 글감을 찾는 일이 아니다. 익숙함 속에 무뎌진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일이다. 반복되는 일상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다. 평소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이 특별한 순간으로 바뀌고, 그 순간들이 쌓여 하나의 인생 지도가 된다. 삶이 조금 더 풍성해지고, 나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그 모든 깨달음이 다시 글로 흘러나와 또 다른 울림이 된다.


결국 글쓰기는 ‘나’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다시 보는 일이다. 사진작가가 카메라로 세상을 담듯, 글쓰는 사람은 마음의 렌즈로 세상을 해석한다. 내가 가진 시선과 마음가짐이 글의 뿌리가 되고, 그 위에서 문장이 자란다. 같은 풍경이라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것이 글이 가진 힘이다.


그래서 이제는 거창한 주제를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것을 보느냐가 아니다. 평범한 것을 얼마나 평범하지 않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내 눈과 마음이 매일 새로워질 때, 그 속에서 자연스레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찰나의 순간에도 영원을 담아내려 했던 사진작가처럼.

한쪽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내쉰다. 그리고 한 걸음씩 걷는다. 그림자 사이를 들여다보고, 작은 흔적들에 귀 기울인다. 그렇게 마음을 채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시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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