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달리 Mar 16. 2024

3.고마워, 늘

글쓰기로 받는 고마움

글쓰기의 시작은 관찰부터 하는 것이고 그다음이 기록이다.
이 과정을 기억이라 부르며 오래도록 기억하는 방법은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한 묘사를 남기는 일이다.    (나달리)



 오전 회의가 막 끝나고 난 후의 일이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열 한시 십 분.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간단하게 해결할 일이었지만, 오늘은 후배 한 명과 식사 약속을 잡아 뒀다. 5년 넘도록 같은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제대로 된 식사 한번 하지 못했던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리던 이유에서였다.     

 오늘의 메뉴는 중국 음식으로 정했다. 마침 오래전 찾았던 음식점이 생각났다. 내부 수리도 끝나고 영업을 다시 시작했다는 말을 옆 동료에게 들었다. 사무실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차로 이동하면 문제없어 보였다. 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열두 시 오 분 전에 도착한 식당 문 앞.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이제 막 도착한 내 앞으로도 대여섯 명이 줄 수 있었다. 문전성시라는 말이 이때 쓰는 표현인가 싶었다.     

 현관문 바로 옆으로 마련된 주방에서부터 주인장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성인 한 명이 들어가 양팔을 길게 벌리면 가득 차 보였다. 모든 요리의 면을 주방장이 직접 손으로 면을 뽑아낸다는 곳이었다. 쫄깃쫄깃 식감이 기계로 뽑은 면보다 더 좋다는 평이 있는 수타면이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주방장의 손놀림에 하얀 덩어리가 얇은 면 가락으로 늘어나는 모습까지 보자면 왜 이곳이 인기가 많은지 가늠됐다.

"23번 손님? 23번! 23번!"

"네!"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을 면 뽑는 장면을 구경하다가, 하마터면 우리 대기 번호를 듣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다. 급하게 오른손을 들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내 번호를 몇 번을 불렀던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2인석, 벽 쪽의 테이블에 앉았다. 이내 종업원이 나무젓가락, 물병, 물, 컵 두 개를 내왔다. 정사각형 모양의 검은색 테이블, 위로는 스테인리스판이 입혀져 막 꺼내온 물병에 맺힌 물방울 얼룩이 맺히기 시작했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는 두 사람이 자장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그 모습에 입에 침이 고일 정도였다. 우리도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검은색 춘장을 기름에 튀기듯 끓이고 두께가 두꺼운 감자, 당근 위주로 선 조리 후에, 기름기가 적은 돼지의 부위를 얇게 썰어 금방 익는 채소와 함께 넣으면 자장면 소스가 완성된다.

그 위에 올리는 완두콩 몇 알과 참깨와 고춧가루까지 몇 번 톡톡 뿌려 넣으면 금상첨화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한 번 맛보면 이해하는 맛. 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러 가족들과 함께했던 맛이었다. 그래서인지 식당 안 손님은 젊은 사람보다 40, 50대가 많았다. 그때의 맛인지, 아니면 당시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마주 보고 앉아 짜장면 두 그릇, 탕수육 작은 것 하나, 마지막으로 주문 한 사이다 한 병까지 싹 비웠다. 마지막까지 젓가락을 들고 있다가 그동안 못 나는 이야기라도 할 겸 말문을 틀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반가움에 서로의 목소리가 묻혔다. 그 정도로 식당 아니나 밖으로도 사람은 많았다.

 계산을 마치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문 앞으로 몸을 돌렸다. 현관문 앞에 무료로 제공한다는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보였다. 동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냉동고였다. 투명한 유리문을 옆으로 밀어 허리를 살짝 숙이면 바로 꺼낼 수 있는 깊이의 냉동고. 하지만 오늘은 무슨 일인지 원래 있어야 할 곳이 비어있었다.

‘물가 상승으로 인하여 부득이하게 후식 제공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양해부탁 드립니다. 주인 백’     

“야, 물가가 오르긴 했나 보다. 짜장면 한 그릇 가격에서 나아가 무료제공 먹거리까지 없어지는 걸 보면.”

“선배님, 옆에 카페가 있습니다. 거기 가서 커피 한잔하시죠. 제가 쏘겠습니다.”

 내 대답을 듣기도 다 듣기도 전에 이미 명근이는 앞장서기 시작했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방금 나온 식당에서 하나, 둘, 옆으로 정확히 세 번째 건물 위로 쓰인 카페 이름은 ‘고마워, 늘’. 투명한 유리로 벽이 세워져 실내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작은 테이블이 몇 개, 성인 키만 한 이름 모를 커다란 화분이 보였다. 한눈에 딱 봐도 깨끗한 실내가 내가 좋아할 만한 곳이었다. 그래도 명근이와. 나, 둘은 작게 마련된 테라스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실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시원함. 얼마나 날이 맑았는지, 민들레 씨앗이 바람에 날아다니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그만큼 가벼운 존재. 어디든 자리를 잡았다가도 다시 몸을 실어 떠날 수 있는. 이른 아침부터 마라톤 회의에 지쳐 있는 내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직 절반의 하루가 남아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최고의 휴식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며 배운 건, 내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두면 작은 틈에서부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글쓰기. 고맙다, 늘.


22.2.4의 기억                     

매거진의 이전글 2.두 남자의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