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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Mar 16. 2024

2.두 남자의 대화

접속사 없이 글 쓰는 방법

몇 년 전 독서 모임에서 글쓰기에 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책 읽는 건 쉬워도 글을 쓰는 건 어렵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쓴다는 내가 신기해 보였나 보다.


“브런치님!, 글 쓸 때 어떻게 해야 연결사 없이 최대한 길게 쓸 수 있을까요?”

“연결 사라고 하면 접속사를 의미하시는 거겠죠?. 그런데, 그리고, 그러나, 그래서 등등의 접속사 맞죠?”

“네 맞습니다. 글을 길게 쓰다 보면 계속 접속사를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나면서, 나 역시 질문을 많이 던졌다. 갑갑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글로 옮겨 적는다는 건, 말 그대로 빈 도화지에 그림 한 점 완성하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 한참을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나만의 비법. 그건‘그림을 그리듯 쓴다.’였다.     


“어린아이 때 종이, 방바닥, 어떤 때에는 벽지에도 낙서를 잔뜩 했었던 기억 있으신가요? 그러다가 어머니께 등을 맞거나 호되게 혼이 났던 그런 경험 말이죠. 저는 많았습니다. 어떤 날에는 울타리 회색 벽돌 벽에 분필로 친구들과 그림을 그렸다가 크게 혼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해 보면 뭘 그렇게 그리고 싶었는지, 만화에서 봤던 로봇 나 유명한 만화 캐릭터를 따라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에는 스케치와 채색이라는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냥 선으로 채워져 있고 형태가 불분명한 커다란 사람형상의 그림이었습니다.

 나중에는 학교 미술 시간에 ‘꽃’‘집’을 그리라는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몰라 남의 것을 베끼거나 흰 도화지 밑에 그림을 대고 희미하게 비치는 흔적을 따라 선을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이 정도면 미술 쪽으로는 재능이 없는 것이 확실했습니다.”

“네? 그런데 그림과 글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상관 많죠.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그리면 그림이고, 나열하면 글이 되니까요. 그리고 둘 다 손으로 옮기는 일이니 상관 많죠.”

“아, 그런가요?”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 생각을 옮겨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은 한 줄, 어느 날은 종이 한 장, 또 어느 날은 몇 장을 채운 적도 있습니다. 만약 배고픈 느낌을 글로 옮기면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아 배고프다.’ 이러면 끝입니다. 그럼, 두 줄은 어떻게 쓸까요? ‘아, 배고픈데 어떤 것을 먹을까? 오늘 비가 와서 그런지 짬뽕을 먹고 싶긴 한데, 미니 탕수육도 먹을까? ’라고 이어 쓰면 됩니다. 여기서 더 늘려볼까요?. ‘아, 배고파서 어지러워. 아침에 우유라도 하나 마실 걸 그랬나. 늦잠 자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더 허기진 것 같아. 점심 메뉴로 뭘 먹을까나. 어제 국밥을 먹었으니 오늘은 좀 매콤한 음식이 당기기는 하는데, 아! 아까 인스타에서 본 고기 짬뽕이나 시켜 먹어야겠다. 탕수육 작은 것도 세트로 되어 있으니까 같이 먹어야지. 디저트는 짬뽕가게 앞에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셔야겠다. 오후에는 외근이니까, 들어오는 길에 팀장님 좋아하시는 카푸치노 한 잔 사다 들여야지. 좋아하시겠지?’. 어떤가요? 생각나는 대로 이어 쓴 내용인데, 괜찮나요?”

“와 신기합니다. 글이 계속 늘어나네요?”

“만약 여기서 같은 내용의 글을 한 페이지로 만드는 건 어떻게 할까요?. 점심을 먹는 장면, 스타벅스에 들르는 장면, 팀장님을 위해 커피 주문 장면, 회사에 들어가는 장면까지 앞으로 이어질 서사의 (시간) 흐름대로 써내려면 됩니다. 중간에 짬뽕집에서 메뉴를 주문하는 대화체 정도 넣고 주변에 보이고 들리는 냄새, 소리, 장면까지 써넣으면 되지 않을까요?. ”     


‘아, 배고파서 어지럽네. 아침에 우유라도 하나 마실 걸 그랬나. 늦잠 자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더 허기진 것 같아. 점심 메뉴로 뭘 먹을까나. 어제 국밥을 먹었으니 오늘은 좀 매콤한 음식이 당기기는 하는데, 아! 아까 인스타에서 본 고기 짬뽕이나 먹어야겠다. 탕수육 작은 것도 같이 먹어야지’

“아, 짬뽕집에 불났냐. 뭔 줄이 이렇게 길어.”

“아, 오빠 조용히 좀 해. 사람들 다 들리겠다.”

 짬뽕집 앞에서 기다린 지 오 분쯤 지났을 때였나, 등 뒤로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배고픔과 긴 손님 행렬에 참다못한 불평한 듯했다. 둘의 투덜거림을 흘려버릴 때 즈음, 내 손에 들린 번호표를 부르는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다들 한 손에 휴지 몇 장씩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맛집은 맛집인가 하는 생각에 나도 얼른 주문을 외쳤다. ‘사장님! 여기 고기 짬뽕하나요!’     

“와 마치 제가 눈으로 보고 있는 느낌인데요?”

“글을 쓴다는 건, 한 점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얀 종이에 한 번에 그림을 완성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저처럼 미술점수 빵점 학생에게는 불가능에 가깝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선을 따라 그리고, 비슷하게 채색을 하는 겁니다. 이건 모방, 표절이 아니에요. 정사각형을 그려 본 적 있으신가요?. 누군가 그려놓은 정사각형을 그대로 따라 그리면 모방이 되지만 한쪽으로 돌려 그리면 마름모 됩니다. 나만의 느낌으로 조금씩 수정하는 거죠. 글쓰기는 어떻게 할까요? 짧은 글을 쓰는 건 되겠는데, 이어 쓰는 게 어렵죠? 무슨 논문 쓰는 것도 아니고, 접속사는 쓰려니 어색해 보이고 갑갑할 겁니다. 옆에 친구를 옆에 앉혀놓고 말한다고 생각하고 쓰세요. 저도 글을 쓸 때 독서 모임에서 말하듯 편하게 씁니다. 생각해 보세요. 친구랑 얘기하는데, 접속사 쓰나요? 그런데 말이야, 아니, 그러나, 이런 말은 안 하잖아요.

또 하나는 듣고 있는 상대방이 공감하도록 ‘반응’을 이끄는 글을 쓰는 겁니다. ‘정말?’‘신기하네’‘그건 좀 아닌데?’ 등의 말대꾸 같은 반응이요. 예를 들어볼까요?. 이번 독서 모임에서 나눌 ‘머니러시’라는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전하려는 상대방은 그냥 지금까지 편하게 만나 책 이야기 나누고 근황을 같이 고민하던 여러분께 하는 겁니다. 논문도 아니고요. 시험지도 아닙니다. 맞다 틀리다가 없답니다.”

     

 “어제 어떤 영상을 봤는데, 내용이 이번 주 모임에서 선정된 도서와 비슷하더라?. 재미있는 건 영상을 만든 사람이 어느 경제학자도 연구가도 아니라는 거야.”

“그래? 그럼 누가 만든 건데?”

“놀라지 마. 대학생이었어.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데도, 벌써 경제에 눈을 떴다는 게 신기했어. ”

“와 진짜? ”

“이번 주 독서 모임에 이 영상을 같이 공유하고 이야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어렵게 생각하면 끝없이 어렵습니다. 그냥 주절주절 손으로 떠든다 생각하고 쓰세요. 접속사 좀 있으면 어떻습니까. 내 생각을 손으로 옮겼다는 것이 더 중요하죠. 정 어려우면 1, 2, 3, 4, 5와 같은 숫자를 붙여서 병렬식으로 써도 됩니다. 글을 이어서 쓰는건 어려워도, 번호를 붙여가는 건 쉽잖아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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