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부딪히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벌의 군락에 관한 내용을 방영해주는 영상을 시청한 적 있다. 여왕벌 한 마리, 수많은 일벌, 그리고 입구를 지키는 벌들이 있었다. 벌들은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을 알았다.그 안엔 혼란은 없었고 수만 마리의 벌이 한 몸처럼 살아갔다. 보고 있으니 경이로웠다.
중심에는 여왕벌이 있었다. 모든 생명의 시작점.
그런데 여왕벌도 태어날 때부터 여왕은 아니라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느 날 여왕벌이 죽거나 사라지면,벌들은 한 애벌레를 고른다. 그리고 그 녀석에게만 특별한 먹이를 먹인다.로얄젤리다. 이 선택으로 인생은 통째로 뒤바뀌기 시작한다. 평범했던 애벌레가 달라진다. 몸이 커지고, 힘이 생기고, 결국 새로운 여왕이 된다.
살다 보니, 운명이라 부를 만한 건 결국 내가 만든다는 걸 알았다. 어떤 먹이를 먹느냐,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 그게 그 벌의 인생을 정한다.
사람도 비슷하다. 모두 다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각자 다른 ‘로얄젤리’를 먹는다.
누군가는 사랑이라는 달콤한 걸, 누군가는 실패라는 쓴맛을, 또 누군가는 도전이라는 강한 영양분을 삼킨다.
살다 보면 그런 경험들이 사람을 조금씩 바꿔놓는다. 가끔은 상처가, 가끔은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가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기도 한다.
결국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내게 뭘 건네느냐보다, 그걸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쩌면 지금의 나는 그저 일벌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매일 비슷한 하루, 반복되는 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끝은 아닐 거다.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내게 슬쩍 건네는
로얄젤리 한 스푼이 모든 걸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가 보다.
여왕벌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존재다.
그리고 그 변화는,
단 한 번의 결심에서 시작된다.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 조용히 물어봤으면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로얄젤리는 뭘까.”
“나는 그걸 먹을 준비가 돼 있을까.”
그 질문이,
어쩌면 나의 하루를 조금은 어제와 다른 궤도로 틀어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