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를 지킨다.

46.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by 회색달


평일의 리듬은 늘 비슷하다. 아침 7시까지 출근, 모니터 속 숫자와 밤 사이 쌓인 메일을 마치 벽돌을 옮기듯 무겁게 나르기.

점심시간엔 잠깐 바깥공기를 들이마신 뒤, 다시 오후의 일들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삶.


매일 같은 행동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의 일상은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전에는 가지 않던 도서관을 퇴근길에 들르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책을 고른다.
주말엔 자리에 앉아 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시간을 흘려보낸 날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처럼 찾아온 연락. 글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과 출간 계약이라는 말은 지금도 내 일상의 신기루였다.


과거의 나는 늘 비교 속에서 작아지던 사람이었다. 승진에서 누락되던 시절, 또래들이 더 빨리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던 순간들, 그때의 나는 조급했고, 불안했고, 늘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다.

그런 시절을 떠올리며 지난 주말 오후에도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한 결 차가워진 바람이 볼을 스쳐 갔고, 낙엽 몇 알도 굴러다녔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린 파도처럼 보일 때, 나는 그 흐름을 바라보며 조용히 나를 생각했다.


단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마음. 그리고 천천히라도 나를 살려내려는 움직임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 문득 선명해졌다.


그때 작년에 함께 썼던 공저,《모든 순간마다 선택은 옳았다》가 떠올랐다. 그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화려한 선택이나 멋진 스토리가 아니라, 선택을 하고 난 뒤 그 자리를 어떻게 지켰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돌아보면 나는 완벽한 선택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냥 다음 선택을 할 수 있을 만큼 나를 챙기며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가 걷는 길이 조금씩 만들어졌을 뿐이다.


비교는 쉽게 후회로 이어지고, 후회는 금방 하루를 흐트러뜨린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주 작은 것들만 지키려 한다. 어제의 나와만 비교하기. 퇴근 후 도서관으로 향하는 루틴. 하루 한 문장. SNS에 올리는 짧은 글들. 대단해 보이지 않지만, 이 사소한 반복들이 생각보다 나를 오래 붙잡아 준다.


평범하게 산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오래가는 힘은 늘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 오늘도 나는 조용한 하루를 조용하게 살아낸다. 그리고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잘 맞는 페이스다. 누군가에겐 느리게 보일지 몰라도, 나는 여전히 움직이는 중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히도 평범하게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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