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완벽함을 버린다.
대신, 내 힘으로 선을 긋는다.
대학 시절, 겨울방학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친구의 소개로 공사장을 다녔다. 새벽 공기는 늘 날카로웠고, 콘크리트 바닥은 언제나 차가웠다. 두꺼운 장갑을 껴도 손끝이 바닥에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거창하지 않았다. 거푸집을 세울 벽을 나르고, 철근을 쌓는 일을 반복했다. 그 사이를 누군가는 먹통을 들고 다니며 벽에 검은 선을 그었다. 아직 아무것도 만들어지지 않은 공간에 선이 한 줄 생겼다. 앞으로 지어질 건물의 윤곽이었다.
‘아직 콘크리트도 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까지 정확해야 할까.’ 숙련된 아저씨들의 눈대중으로 해도 될 것 같았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았다. 몇 센티의 오차로 욕을 먹고, 일을 다시 하고, 시간을 날렸다. 검은 선이 조금만 틀어져도 모든 공정이 흔들렸다.
추운 날씨 탓인지 바닥 면이 갈라진 적도 있었다. 며칠을 함께 일하던 반장이 말했다. 삼십 년 넘게 이 일을 해온 사람이었다. “콘크리트는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다. 대신 어디서 어떻게 깨질지는 우리가 정할 수는 있지.” 그 말이 그땐 잘 와닿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콘크리트는 기온과 습도에 따라 수축하고 팽창한다는 것을. 그러니 크랙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리 선을 긋는다고 했다. 균열이 생길 자리를 정해두면, 나머지는 버틸 수 있다고. 무작위로 터지게 두지 않고,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다.
완벽함을 믿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갈 수 있었다. 약점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기 때문에 고쳐 나갈 수 있었다. 그때 그 선은 보기 좋은 표시가 아니라, 실패를 통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스무 해가 지난 지금, 내 현장은 사무실이다. 실수하지 않으려다 보니 매번 마지막까지 붙잡고, 기준을 높게 세우다 보니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누군가에게 넘기면 틀릴까 봐, 선을 긋지 않은 채 모든 걸 다 떠안는다. 그러다 보면 결국 마음부터 금이 간다. 크랙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모른 채로.
가끔 겨울 공사장이 떠오른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의 약한 곳을 미리 표시하던 그 방법. 지금의 나는 그걸 잊고 있었다. 모든 걸 견디려 하지 말고, 어디까지가 내 몫인지 선을 긋는 일. 미리 인정하면, 그다음은 생각보다 단순해진다. 완벽해지겠다는 다짐보다, 오래가겠다는 선택. 그게 그때 공사장에서 내가 배운 방식이었다.
완벽함을 버린다. 대신, 내 힘으로 선을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