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2030대의 내가 겪은 번아웃은 나약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달리는 법만 배워온 결과다.
우리는 종종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던 나는, 핸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돌릴 여유가 없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여기까지 와버렸다. 뒤돌아볼 틈도 없이, 멈추는 법도 모른 채.
생각해 보면 나는 한 번도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정해본 적이 없었다. 주어진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해 달리는 데만 익숙했다. 그런 삶에서 지치는 일은 어쩌면 너무 당연할지도. 그러니 번아웃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방향 없이 달려온 시간의 누적된 결과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피로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이 피로는 나를 멈춰 세우기 위해 몸이 먼저 보내온 신호다. 이제는 속도를 줄이고, 잠시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시간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괜한 상실감이나 막연한 두려움에 나 자신을 물들이지 말자. 지금의 번아웃은 무너짐이 아니라, 비로소 자기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