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통장

64. 부딪히며 지나온 것들. 파도는 늘 있었고, 나는 그 위에 있었다

by 회색달
서른한 살, 처음으로 은행 창구 앞에 앉아 마이너스 통장으로 내 인생을 설명해야 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은행 창구 앞에 앉았다.스마트폰으로 적금도 대출도 가능한 시대에, 나는 굳이 번호표를 뽑고 낮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서른한 살, 마이너스 통장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띵동! 329번 고객님!”


다음이었다. 곧 있으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저 의자에 앉아 내 삶을 곱씹겠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돈에 ‘0’의 개수를 늘려 달라는 일이 뭐 그리 대수라고, 나는 삼십 분 넘게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굳은 허리를 펴며 창구로 걸어갔다.


“띵동! 330번 고객님!”

“네.”


퇴직금 담보대출이 필요했다. 당장 막아야 할 빚이 있었다.

이혼만 하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남아 있는 마이너스 계좌였다. 억울했지만 버티려면 은행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빌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돌아보면 남들만큼은 살았다. 직장에 자리 잡았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불화는 빠르게 쌓였다. 툭 내뱉은 말 한마디에 불씨는 다시 살아났다. 경제관념도, 삶에서 무엇을 먼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너무 달랐다.


균열을 모른 척하지는 않았다. 대화도, 상담도 해봤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이혼을 결정한 뒤 판단은 빨랐다. 함께 산 시간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나눌 건 정확히 나눴다. 그런데 빚만은 내 쪽으로 남았다. 공동으로 사용하던 생활비 대출과 카드 정리가 깔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행원은 친절했다. 서류를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에서야 손바닥에 땀이 차 있다는 걸 알았다. 숨이 길게 빠져나왔다. 서른한 살, 내 계좌에 찍힌 마이너스 숫자는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의 무게처럼 보였다.


그 뒤 1년쯤은 술과 담배, 사람을 끊었다. 돈에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구내식당에서 세 끼를 해결하고, 매일 마시던 커피도 끊었다. 집과 직장, 도서관만 오가며 돈 공부를 했다. 경매에 입찰했고, 주식 계좌를 만들었다. 청약에 도전해 당첨되고 팔고, 작은 아파트를 사보기도 했다. 물론 확인하지 못한 문제들로 손해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생각을 옮기기 시작했고, 글을 썼다. 소책자를 냈고, 공모전에 도전했다. 결과는 대부분 실패였다. 그럼에도 그때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던 나에게 지금도 감사한다. 다시 해보라면 매번 삽질만 하며 시간과 돈을 허비할 것 같다.


은행에서 받은 계약서 묶음과 원고, 출판 계약서를 함께 묶어 두었다. 지난가을부터 한 장씩 꺼내 보는 중이다.

예전에는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게 무서웠다. 불 꺼진 거실, 차가운 바닥, 내 숨소리만 남은 공간. 가끔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만이 아직 현실에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곳에서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발바닥으로 바닥의 온기를 확인하고, 처방받은 약을 삼킨 뒤 호흡을 세며 한 걸음씩 세상으로 나오는 연습을 했다.


2년전 여러 작가들과 공저 작업을 하며 ‘선택’ 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모든 순간의 선택은 그때의 최선이었고, 지금의 나는 그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과정에서 나는 계속 ‘처음’을 떠올렸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여전히 처음이니까, 선택이 어려운 게 당연하다고.


지금도 읽고, 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온라인에서 응원을 주고받는다. 아직도 이런 관심은 익숙하지 않다. 나는 여전히 초보다. 그래서 오늘도 ‘처음이라서’라는 말을 핑계 삼아 쓴다. 언젠가 다시 살아보겠다고 적어 둔 첫 일기장을, 담담하게 꺼내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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