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가 아니라 안간힘이었다.

by 회색달


지난주, 강원도의 깊은 곳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됐다. 겨울 동안 문을 닫은 개인 소유의 펜션이었다. 사람은 없을 거라고 했다.


돌아보면 나는 10년 동안 이틀 이상 쉬어본 기억이 없다. 남들은 해외여행을 다니고 휴가 계획을 세우는 동안,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지금 버티고 서 있는 곳에서 한 번 더 멀어지면, 다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던 것 같다.


20대 때의 나는 지금과 정반대였다. 미치듯이 돌아다녔다. 주변에서는 무슨 역마살이라도 낀 사람처럼 보인다고 했다. 지금의 멈춤이 더 낯설었다.

이번의 이탈은 외출은 나름대로 큰마음을 먹은 선택이었다. 여행이라는 말로라도 지금의 현실에서 잠시 떨어져 나오지 않으면,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 같았다. 주저앉아 있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해왔지만, 결국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1월의 산속은 조용했다. 첫째 날 밤에는 눈이 내렸고, 둘째 날 밤에는 은하수가 흐리게 보였다. 사진처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희미하게나마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낼 줄 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밤하늘에 한참 마음을 빼앗긴 뒤, 늦게 일어나 밥을 먹고 잠깐 걷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처음 며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삼 일째 되던 날 아침, 몸에서 거부반응을 보였다. 할 일이 없는데도 괜히 일찍 눈이 떠졌고, 휴대폰을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평소에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살아왔는지가 그제야 느껴졌다.


남은 며칠은 그 조바심을 그냥 두기로 했다.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지켜보는 연습이었다. 길을 잃을까 봐 두려웠던 건, 어쩌면 목적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 속도를 제어할 방법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레이크를 밟는 법을 모르는 채 달리기만 했으니, 한 번 멈추면 다시는 그 속도를 내지 못할까 봐 겁이 난 것이다.


일주일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야근하던 밤, 습관처럼 창밖을 올려다봤다. 인제에서 보았던 하늘은 보이지 않았고, 대신 도심 속 건물 외벽의 불빛만 보였다. 각자 다른 밝기의 그 불빛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저 불빛들도 저마다의 속도로 흔들리며 제자리를 지키는 중이겠지.'


그곳에서의 일주일이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바꿔놓았을 리 없다. 나는 여전히 대도시 한복판에서 야근하고, 식은 커피를 마시며 내일의 출근을 걱정한다. 인생의 반전 같은 건 산속에 묻어 두고 온 모양이다.

하지만 창밖의 빽빽한 아파트 불빛들을 보고 있으면 전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다. 저 불빛들도 어쩌면 나처럼 제자리를 잃어버릴까 봐 겁을 내면서, 그러면서도 그냥 켜져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동안 나는 내가 떠나지 ‘못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나는 돌아올 곳을 잃어버릴까 봐 무서웠던 것이고, 동시에 이 지루한 일상을 지키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다. 10년 동안 제자리를 맴돌았던 건 정체가 아니라, 내가 만든 이 작은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나만의 안간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날밤 흐릿했던 은하수가 생각났다. 여전히 나는 같은 자리에 있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제자리를 맴도는 내 발걸음이 전처럼 답답하지 않다.


'후...' 그만, 마무리 짓고 퇴근해야겠다.


사람을 피해 일주일 동안 산에 갔다가, 예상하지 못한 폭설로 인하여 차는 꺼내지도 못하고 걸어 나왔습니다.

다음 주나 되어야 눈이 녹을 것이라는 말에 허탈하면서도 '이게 여행이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창고에 보관 중이던 썰매도 꺼내어 타봤는데

썰매보다는 눈에 뒹구는 수준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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