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2026년 1월 12일 밤 10시 50분) 책상을 정리하다 3년 전 메모지 한 장을 발견했다. 2023년의 내가 적어둔 글자였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는 말 뒤에 정작 나는, 작년에 찍지 못한 마침표들에 머물러 있었다. 이것저것 손은 댔는데 이룬 건 없는 것 같고, 남들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는데 나만 여전히 '0'에 멈춰 있는 것 같은 조급한 기분.
메모에는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가 쓰여 있었다. ‘나는, 아직 미완의 꾸러미를 안고 경계 지대를 서성이는 중이라고, 다음으로 잘 건너가고 싶어 혼자 씨름하는 중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끝맺음과 시작은 낯선 경계에 있는 법이라며.
세상은 0과 1로 움직인다는데, 생각해 보면 0은 '꽝'이 아니다. 1이라는 숫자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시작점일 뿐이다. 아무것도 못 했다고 자책했던 시간 속에서, 사실은 진짜 내 모습이 만들어지고 있었는지도.
0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오히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가장 똑똑한 선택이라는 걸, 3년 전 메모를 보고 나서야 이해됐다.
마흔 중반이 되어보니 알겠다. 인생은 원래 드라마틱한 성공보다 미완성된 문장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중요한 건 완벽한 마침표를
찍었느냐가 아니다.
다시 0의 마음으로
신발 끈 묶고 한 걸음을 뗄 수 있느냐는 거지.
2026년의 내가 다시 시작하려는 0은 3년 전의 그 0과는 다르다. 좀 더 흔들려봤고, 좀 더 고민해 본 만큼 조금은 묵직해진 0이다.
0은 끝이 아니다. 내일로 열려 있는 문이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서 있는 거다. 숨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딱 한 걸음만 가봐야겠다. 0에서 1로 가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다시 걷는 행동 하나면 되니까.
일단 뭐라도 해야 꿈이든 뭐든 생긴다. 1은 뭐라도 시작한 사람한테만 주어지는 공정한 대가다. 완벽한 1이 아니면 좀 어떤가, 어제의 0보다는 더 나은 1에 가까워졌을 것이다.
강박은 버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나의 1이 가질 수 있는 비결이었다. 3년 전 메모의 마지막 문장 앞에 나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