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계

by 회색달


일본 여행 중이었다. 일정 중 오사카를 방문했을 때 가판에서 탁상시계 하나를 봤다. 앉아있는 자세로, 한 손을 들고 있는 고양이 모양의 시계였다. 여행지에서 사는 물건이 다 그렇듯, 그 순간의 분위기가 전부였다. 같은 모양을 2개 샀다. 돌아오는 길에 그 사람을 만나 하나를 건넸고, 그날 밤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며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내왔다. 내 시계도 내 책상 한쪽에서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각자의 다른 공간에서 같은 모양의 고양이가 흔드는 손짓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며칠 뒤엔 다시 만났다가, 다시 돌아갔지만 보이지 않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하지만 일상은 시계의 존재를 금방 무채색으로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의 손짓은 인사가 아니라, 건전지의 에너지가 허락하는 만큼의 무의미함이었다. 익숙함은 회색이 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고양이가 손을 잘 흔들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 시계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초침이 멈춰 있었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고장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 무렵 우리는 헤어졌다. 시계가 멈춘 자리에 고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더는 서로의 내일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멈춰버린 초침처럼, 관계도 어느 지점에서인가 조용히 멈춰 서 있었을 뿐이다.


시계를 고치지 않았다. 내 책상 위의 시계가 멈춘 것도, 관계 역시 멈춘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그 사람의 고양이도 멈췄을지, 혹은 진작에 버려졌을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뒤, 장식처럼 자리만 지키던 시계를 바라봤다. 멈춘 초침은 그대로였다. 배터리를 갈면 다시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손에 들었다가 내려놓기만 반복했다. 자리를 옮겨보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치 오래된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결국 시계를 버렸다. 분리수거함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그대로 내려놓았다. 돌아오는 길에 내 방 책상을 한 번 쓸어보았다. 시계가 놓여 있던 자리에 옅은 먼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금방 닦아내면 사라질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시간을 확인했다. 휴대폰 화면에 숫자가 정확하게 떠 있었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알 수 있었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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