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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Mar 23. 2024

작가라는 이름

한 가지 일을 반복하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 하나.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점차 무덤덤해지는 감각. 혼자만 덩그러니 남는 착각에 있을 때. 그런 순간. 그런데 만약 그런 순간조차도 나와 동화되고 있음을 느낀다면 어떨까?


 글 쓰는 일을 해보기로 했을 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느냐는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맞을까?’‘괜히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닐까?’ ‘문학을 전공으로 한 것도 아닌데 가능은 할까?’. 맞춤법이 틀렸다고 사람들이 비웃는 건 아닐까?. ‘거의 매일 쓰다시피 해야 한다는데 가능할까?’ 하는 수만 가지 부정적인 생각들. 의심의 꼬리는 길고 가슴속 부담감만 한가득하다.

 이럴 땐 차라리‘인정’을 버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인데, 처음인데, 어떻게 한 번에 ‘뚝딱’하고 글을 쓸 수 있겠느냐 하는 나기 위로 말이다.     


 몇 년 전 지역 잡지사의 청탁을 받아 쓴 적 있다. 나중에 출판 본을 받아 읽다 보니, 이상하게도 내가 쓴 원고와는 아주 달랐다. 편집자의 손을 거쳐 많은 운문 끝에 나온 글이었다. 초고 원고와 비교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맞지 않는 맞춤법과, 틀린 문장이 잔뜩 보였다. 이래서 글은 오래 쓰고 볼 일인가 싶었다. 그때의 일은 신선한 충격이 되어 지금까지 글을 쓰는데 원동력이 되어 주고 있다. 이제는 오랫동안 남겨놓은 나의 서투른 시간을 다시 읽을 땐 오래전 사귀었던 친구를 다시 만나는 기분도 든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땐 수많은 질문에 밀려 나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마음속 불안이 켜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필사적으로 물음표의 꼬리에 매달린다. 그럼 어느 순간 구 부 젖임은 펴지고 느낌표가 된다. 의심에서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인 셈이다. 이걸 끈기라고 부르고, 작가가 갖추어야 할 마음이다.          

 막연한 두려움은 낯선 일, 환경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나의 능력을 판가름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의 꾸준함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것이 수년째 글을 쓰는 이유며, 나만의 방법이고.     


 사람들이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할 땐, 나의 대답은 변함없이 확고하다. ‘당신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며 이미 1cm 이상은 목표를 향해 걸어왔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라는 대답. 


 도전하기도 전부터 의심부터 하는 이유, 과정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도전할 땐 어김없이 마음속 ‘자기 검열관’이 나타나 자신을 지적하기 시작한다. 그는 나에게 ‘이건 이래서 잘못될 것만 같고…….’‘겨우 이거밖에 안 돼?’라는 말로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하는 존재.     

 

요즘은 오히려 이런 존재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중이다. 어떻게든 옳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가려는 걸 방해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런 불안조차 소중한 글감으로 쓰려하는 중이고. 자신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그것이 작가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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