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날처럼.

by 회색달



이혼을 겪었다. 졸지에 혼자가 됐다.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가족들과도 거리가 멀어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의지대로 감행했던 일의 결과였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 때문이었을까,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사람에게 의지도 해봤다. 마치 내 삶의 마지막 사랑인 것처럼 열렬히 사랑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얼마 가지 않았다. 그럴수록 마음은 무거워졌고 손쉬운 위로를 찾아다녔다.


위로, 할 수 있다면 나의 마음속 차지한 무거운 돌을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꺼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게 쉬울 리 없다. 각자 사람마다 느끼는 아픔의 무게와 크기가 달랐으니까.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툴툴 털어버리고 일어서는 시간 동안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방황했다.


술에 의지해봤다. 퇴근 후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시간 사람들과 함께 술 한잔에 털어버린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많이 했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구분 없이 매일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의 연속. 그러자 함께 하던 사람들은 점차 멀어졌다.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방구석에 처박혀 술을 마셨다. 직장 일에도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직장 동료들은 점차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난 사실인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환청과 과민반응, 과대망상. 정신과 상담결과 들은 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장소에 가는 것도 꺼려졌다. 아니, 겁이 났다. 내 뒤에서 누군가 수군거리고 손 가락질 하거나 ‘바보 같다’라고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칠 것 같은 기분에 길을 걷다가도 뒤를 돌아본 적이 많았다. 이 증상 역시 대인기피, 공황장애의 한 증상이었다. 술에 의존했던 삶이 약으로 바뀐 것 말고는 변한 것이 없었다.


‘사는 게 쉽지가 않다.’

마치 오늘이 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하루를 보낸 적이 많았다. 스스로 삶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술의 힘을 빌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던 기억, 술과 함께 약을 한꺼번에 먹고는 잠에서 아예 깨지 않으려고 했던 기억, 고속도로 위 가속 페달에 힘을 준 채로 갓길에 차를 들이받은 기억까지. 누군가에게는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하겠지만 나에게만큼은 ‘삶의 마지막 날’로 삼고 싶은 심정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나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계속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내 삶에 가장 큰 변화를 준 건 유일한 가족, 아이의 생계가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나에게서 떠나 있었지만 어쨌거나 아이를 위한 양육 책임은 있었기에 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했다. 중독 센터와 병원을 전전하는 내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다짐을 실행으로 옮긴 후, 진정한 오늘을 살았다. 평범한 일상, 보잘것없어 보이는 하루라고 흘리지 않았다. 대신 어떻게든 변화하기 위해 치료에 성실히 임했다. 우울증이 밀려올 때마다 저장된 옛 사진을 보며 정신을 차렸고 고정금액을 월급에서 떼어 아이의 계좌로 넣었다. 이 과정을 글로 옮겼다. 오늘을 내 삶의 가장 젊은 날이라 여기며 일기를 썼다.


일기 쓰기는 내 하루를 돌보는 일이다. 반성과 다짐, 앞으로 미래의 나에게 건네는 삶의 계획서와도 같다. 직장인의 일기 쓰기. 쉽지 않았다. 학창시절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반성문을 몇 번 써보거나, 어쩔 수 없이 숙제 검사를 받기 위해 제출해야 하는 일기 쓰기 외에는 쓴 적이 없다. 가장 힘든 건 어떤 내용의, 기억을 써야 하는 쥐었다. 날마다 별의별 기억이 머릿속을 헤집어댔다. 오래전 있었던 일,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이 뒤죽박죽되는 경우도 많았다. 한때는 과도한 음주로 인해 발생한 치매는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으며 노트북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내 삶은 불안해 보이기만 했다.


하루가 일 년처럼 느껴졌다. 지금 하는 일이 맞는 일인지 싶기도 했고 시간 낭비하는 건 아닌가 했다.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혼자 있는 시간을 조금씩 확보했다. 틈틈이 스마트폰을 열어 그날의 감정과 기억을 적었다.

중간에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날이 많았지만 앞서 경험한 실패와 손쉬운 위로를 찾아 방황하던 나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기에 멈추지 않았다. 미래의 나에게는 희망찬 오늘만을 건네주고 싶었다. 또한, 힘든 경험일수록 성취감이나 자신을 위쪽으로 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늘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를 빚어가며 사는 중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도 눈길이 갔다. 어떤 이는 마지막 삶의 날짜를 통보받은 채 살아가고 있었고, 어떤 이는 사고로 인해 한쪽 팔을 잃었지만, 운동을 멈추지 않으면서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선수가 되어 있었고, 또 누구는 마지막 숨을 거두는 병원에 근무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옮긴 사람도 있었다. 그 외에도 사업에 실패해서는 막노동을 하면서 가계의 생계를 지켜냈다는 이야기,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께서 치매 증상이 오기 시작하자 손수 자신의 사라지는 기억을 한 줄 한 줄 글로 남겨둔 이야기, 나이 오십에 마라톤을 시작해 갱년기 우울증을 극복한 이야기,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유명 소설가가 되었다는 이야기…….;



고개만 돌렸을 뿐인데, 나보다 더 최악을 이겨내고 더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있어 상처와 아픔은 더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아니라,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딛고 일어서야 할 뜀틀과도 같은 존재였다.


혼자가 된 이후 많이 울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 가족에 대한 원망, 혼자가 되어버린 쓸쓸함으로 느껴지는 감정을 채우기 위한 발악이었다. ‘나는 왜 저 사람들처럼 살 수 없는 걸까?’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글을 통해 듣고 느끼면서 알게 됐다. 산다는 건 버텨내는 그것보다 즐겁게 즐기는 시간으로 여기면 그만이라는 것을. 파도를 이겨내려 하면 힘이 들지만, 순리대로 흘러가면 더 멀리, 더 쉽고 즐겁게 갈 수 있다는 것도. 사람은 작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땅 위에 뿌리를 단단히 내려 보진 비바람을 견딜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처음 일기를 남긴 날로부터 만 7년이 지났다. 중독일기, 매일 쉬지 않고 기록하는 일.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나, 아픔, 기억을 손으로 옮겨 적으면서 다시 읽어 보는 시간이다. 그럼 알게 된다. 진짜 느껴지는 아픔이었는지, 혹시 내가 억지로 만들어낸 회피성 핑계는 아니었는지 하는.


한 달, 아니 일주일도 하기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여기까지 글쓰기에, 강연까지 다녔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그동안 내 삶은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듯하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 쓰려고 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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