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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Jan 26. 2024

12.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냈을때의 효과

새해가 밝았다. 어쩔 수 없이 올해도 한 살 더 먹었다. 그나마 나이 한 살 더 먹은 올해는 마음에 드는 일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지, 나만의 취향의 소비인지, 정말 가고 싶었던 여행지인지조차 몰랐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다녀온 낯선 장소의 신비함을 쫓아, SNS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진을 한 장 담으면 좋았다. 회사에서는 동료들의 최신형 자동차를 구매했다는 자랑에 마음이 훅하여 소비한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옷, 음식, 취미 생활 등등. 한참 지나고 나서야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동이 나만의 생활 양식이 아닌 남들의 기준에 좋아하는 모습이 치장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아들은 다른 집 애들보다 철이 일찍 들었지. 유행하는 옷 한 벌 사달라고 조른 적 없었다니까.'

어린 시절,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모여 어른들 이야기를 나눌 때면 자주 듣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조숙하거나, 철이 일찍 든 게 아니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원해도 이룰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거였고, 욕심은 나를 괴롭게 할 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 직장에서 받는 월급이 온전히 내 통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어린 시절의 있었던 철도 없어졌다.


뒤이어 세상의 모든 반짝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억지로 눌러놓은 욕심까지 고개를 들어 그동안 소비에 소극적이었던 내 모습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월급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는 모습은 부모님에게나 인정받을 수 있는 착한 아들이었으니까.


 일단 기분 좋아질 것 같은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시간과 돈을 들여 경험했다. 대부분이 소비에서 그친 일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최고의 행복이었다.

 순간으로 얻는 행복은 그 기쁨도 오래가지 가지 못했다. ‘정말 저거 하나만 가지면 행복할 것 같은데' ,'나도 저기 한번 가보고 싶다.'라는 마음에, 돈을 들여 소비한 것들은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얼마 안 가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그조차도 얼마 안 가 또 바뀌었다. 마치 옷 가게 들러 고심 끝에 고른 옷 한 벌을 몸에 대고서는 거울 앞에서 내려놓았다가 이내 또 다른 옷을 찾는 것처럼.


 겉치장으로 반복된 행복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신비함'과 ‘새로움'을 잃게 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가지고 싶은 욕심이 행복인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   


 이제는 좀처럼 질리지 않고 꾸준하게 하는 일이 있다. 어디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말마따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하는 일도, 돈을 목적으로 하는 일도 아닌 일. 단지 내가 가진 색깔로 세상을 다시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랄까.

그 일은 글쓰기다. 처음엔 낯설었다. 마치 격식 차려입어야 하는 옷을 억지로 내 몸을 끼워 넣어야 하는 것 만 같은 부담감이 밀려왔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오늘은 꼭 글을 쓰고야 말겠다.’라는 다짐으로 퇴근 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어떤 내용을, 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 장소라도 바꿔보면 나아질까 싶어 다른 사람들처럼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켜놓고는 커피 한잔을 마시며 무게를 잡아 본다. 테이블 한쪽을 차지한 노트와 볼펜을 노트북 옆에 가지런히 놓고는 커피잔과 함께 사진을 한 장 찍어 SNS에 올려본다. 그리고 이어서 쓰는 제목과 내용. ‘오늘의 일기.’‘작가 지망생’


 방법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건 글쓰기란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생각 덕분이었는데, 가만히 궁둥이 붙이고 앉아 쓰는 건 정말 실력 있는 작가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말 그대로 ‘초보’인 내가 그런 무게 잡고 쓴다는 건 언감생심이라는 말이다.

 즉 글쓰기는 지금 쓰는 것. 내일도 쓰고 그다음 날도 쓴다. 장소는 어디에서든 상관없다. 예전에는 메모지와 볼펜이 있어야만 글을 썼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손바닥만 한 유리 화면을 몇 번 두들기면 글자가 한 줄, 두 줄 생기는 기계를 다들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운전 중 갑자기 떠오르는 영감을, 회사에서 회의 준비 중에 잠시, 퇴근 후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 중에도 언제든 어디에서든 쓸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자 스마트폰만이 가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걸 그동안 왜 몰랐을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점심 식사 중에 동료가 최근 산 새 자동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남은 휴식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초고를 작성한 내용이었다.


 나는 쓰는 것 자체를 좋아했지, 누군가의 관심을 받거나 인정을 위해 쓰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셈이다.

 점차 나는 어떠한 성공을 열망하거나 그것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는데, 대신에 꾸준함은 놓지 않기로 다짐했다. 쓰고, 쓰기 위해 다시 읽고, 쓰기 위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든 시간 들. 아이러니한 건이 과정에서 ‘언젠가는 이루겠지’라고 생각만 해두었던 중간의 목표들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3전 4기의 마음으로 이번이 안 되면 또 4전 5기의 마음으로 ‘브런치 이야기’의 작가 활동을 도전했었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4년. 맨 처음 작성해놓은 신청서의 일자를 보니 2019년의 겨울이었다. 알고 보니 그동안 2번의 도전을 다시 했었다. 신청서의 일자는 각각 2021년과 2022년도. 그 당시의 나는 어떤 마음이 들었기에 그토록 작가 활동에 목말라 있었던 걸까.

 

 그 해답은 하나. 사소한 일에도 쉽게 마음 흔들리고,  자신을 상처 주는 상황이 많았던 나날들에 대해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과 나를 향한 위로, 격려였다.


물건에 대한 욕심은 1차원 적이라면, 스스로 주는 성취감, 안정감을 위해 꾸준하게 이 일을 반복했고 이 행동이 나의 애착을 끌어낸 셈이었고.

 좋아하는 일을 꾸준하게 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고. 매일 아파하고, 희뿌옇게만 보였던 세상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일종의 정리벽이 있는 나는, 혼자 지내고 있는 집안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을 볼 성격이 못 된다. 나를 위해서라도 즉각 즉각 정리와 정돈이 유지되어야만 안정감을 느낀다는 걸 최근 들어 깨달았다.

 며칠 전에는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가 잠시 불어온 바람에 떨어져 있던 모습에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큰맘 먹고 건조기를 한 대 들였다. 처음에는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이런 가전제품을 들인다는 게 사치라고 느껴졌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만족감이 지급한 돈값보다 훨씬 하고 있다.


이런 것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어쩌면 일상에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었던 감정 하나까지 주워 와서는 흰 종이에 담아놓으며 만족하고 있으니, 늘 새로움을 뒤쫓던 나로서는 딱 좋아하는 일 일지도 모를 일.


 요즘은 내가 찾아낸 좋아하는 이 일을 꾸준하게 오랫동안 할 수 있다면, 그다음의 내 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분명한 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었을 테고, 근육도 약해져 있을 터. 그렇지만 어떻게든 더 나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건 분명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걸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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