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달리 Jan 26. 2024

13.기억과 기록의 차이

보이지 않는 병, 분노

 나는 글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교과서나 문제집에 나와있는 글은 잘 읽어도 독서,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그러던 내가 글쓰기에 빠져든 건 이별을 겪은 이후부터다.

"무슨 글을 쓰는 거야?"

주변에서 물을 땐 정확히 대답을 못했다. 대신 일기를 쓴다고 했다. 혼자 읽고 쓰는 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별은 나에게 많은 걸 이야기했다. '혼자가 된 기분은 어떨까?' '마음이 아프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등 등. 이미 수많은 이별을 겪은 이후였는데도 면역력은 없었나 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방황했던 걸 보면.

 2년이었다. 술을 마셔봤고,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감정을 만들어도 봤다. 그럴수록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또렷 해졌다. 마치 머릿속 기억 회로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명령어를 내린 것처럼.


 그녀는 다섯 살 연상이었다. 여행자 숙소에서 처음 만났지만 대화가 잘 통했다. 밤늦게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여행 일정이 있어 연락처를 교환한 뒤에 짧은 만남을 뒤로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여행의 설렘은 이어졌다. 그녀의 연락 덕분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것처럼 마음이 익숙했다. 시간이 흘러 만남으로 이어졌고, 법 적으로 둘이 하나가 됐다.

 이전부터 작은 의류 사업체를 운영하던 그녀였다. 매번 사업이 마음대로 될 일은 없겠지만 우리의 상황은 더 나빴다. 무리해서 확장한 사업은 끝내 부도 처리를 됐고, 언젠가부터 서로의 마음엔 의심과 불신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함께 하기로 약속 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손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친정 부모님께서도 이미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서일까, 나는 잡은 손을 고쳐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욕심이었다. 그때의 마음을 누구에게 실 컷 털어놓을 수라도 있었으면 괜찮았을까. 혼자 위로하고 보듬기를 반복했지만 2년이 안되어 그녀와 잡은 손을 놓았다.


 내가 중학교때에는 집안 사정이 적당한 수준으로 지냈다. 학교에 등교할 땐 주머니에 천원짜리 몇장을 넣을 수 있었고,  현장 학습이 있을 때, 견학, 수학여행에서도 만족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 즈음 아버지의 사업 실패에 끝이 났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건 집안 곳곳에 붙어있는 빨간색 테이프와 거실 한가운데에서 울고 있는 한 여자의 눈물이다. 그 사람이 엄마였고 그 일로 부모님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다.

나의 20대는 늘 바빴다. 어쩌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계속 반복되었을지도 모른다.

 경쟁의 연속인 직장에서 종종 들리는 주변 사람들의 연애사에 관심이 가기는 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매일, 매 순간 내 편은 없는 것 같은 현실에 혼자 어른인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는지도. 돌아보니 30대 중반이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왔고, 사회 물을 들였으니 어른이 된 줄 알았다.

 처음으로 만든 '내 편'이 사라진 뒤에야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위로받기를 원한다는 걸. 마치 10대의 중학생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도 숨겼다. 굳이 아팠던 기억을 들추고 싶지 않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예 가족관계를 꺼내지도 않았다. 툭 거느리기라도 하면 터질 것 같은 물 풍선을 들 키고 싶지 않았다.

 사람은 기억하는 존재다. 행복, 슬픔, 아픔, 기쁨 등의 모든 감정을 몸과 마음에 새겨 넣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업 실패도, 두 분의 헤어짐, 사라진 내 편까지 모두 기억으로 남았다.

 

 기록한다는 건 적어도 나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기억과 기록, 둘 중 어느 쪽이 먼저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과거의 기억으로 지금을 기록하고, 지금 쓰고 있는 순간이 미래의 나에게 있어서 기억이 된다는 말. 사랑하는 존재를 쉽게 잊지 않기 위해 흰 종이 위에 검은색 볼펜을 꾹꾹 눌러 가며 쓰는 순간만큼은 그를 위한 기도가 아닐까. 이 순간만큼 행복한 기억은 또 없을 테고.

 결국 기록과 기억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반복의 연속인 셈이다. 반대로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에게 의미 없는 존재였을 테고, 이런 인물은 나의 삶에서 금방 삭제될 것이 분명하다.


 이제는 억지로 지우려 하지 않기로 했다. 순리대로 기억나는 대로 살겠다. 다시 말하면 마음속 깊이, 아직 밝혀지지 않는 뇌의 수많은 기억 회로 중 숨어 있는 기억의 한순간이 떠오를 때면 '툭'하고 현재에 던져놓기. 단 감정을 있는 그대로 쓰지는 않기. '보고 싶다.'' 화가 났다.' '사랑했다.' 등의 말 대신, 그 순간만큼은 내가 존재했었기에 행복했다는 말과 지금도 다시 떠올 릴 수 있으므로 더 행복하다는 말로 바꾸기로.


 얼마 전 아침 라디오에서 들은 말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의 대화가 짧아지는 대신 글이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말 한마디를 품어 문장으로 탄생시키는 데에는 SNS가 한몫했다고 본다.  이별 후의 감정을 대신하여 개인 프로필 사진을 바꾼다던가, 복잡한 심정을 애써 정리하여 한 줄을 남긴다던가 하는 식의 말까지. 가만보면 이조차도 그때의 자신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일지도. 아픔을 치유하는 건 어떠한 위로 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나 역시 기록과 기억의 반복에서 얻을 수 있었던 위로야말로 나에겐 제일 효과 좋은 약이었던 만큼, 행복하기 위해 기록을 더 남겨야겠다.

그녀와 헤어진 후 많은 시간동안 방황 했다. 그 끝에는 하나의 다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 작가가 되어야 겠다'라는 조금은 허무맹랑한 다짐. 덕분에 지금은 이별 후에 겪는 일시적인 상실감에 젖어 지금의 기억이 불행지 않고 있다. 많은 시간 남긴 기록의 힘이다.

 글쓰기 전까지만 해도 창문 밖 나무가 심하게 흔들렸는데, 밖이 조용하다. 겨울바람이 드디어 지나갔나 보다. 신기하게도 내 마음까지 조용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12.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