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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00글쓰기 3]옥상 정원

by 회색달



옥상. 도전. 어려움. 극복과정. 경험. 느낀 것.

깨달음.


옥탑방에 살고 싶었다. 무더운 여름 저녁, 옥상에 평상을 깔아놓고 삼겹살을 구워 먹는 상상을 했다. 비 내리는 날엔 곧바로 지붕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도 듣고 싶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날 것들이었다.

주변에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이 뭐가 좋냐며 사서 고생한다고 걱정했다. 더 나이가 들면 정말 해보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었다. 젊었을 때의 고생은 돈을 주고라도 경험해 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때마침 2년 동안 거주하던 오피스텔과의 계약이 끝나가고 있었다. 23.9월 이사를 결정했다. 주변 부동산을 직접 돌아다니며 발품 팔았다. 많은 이사 경험을 해봐서 안다. 진짜 보물 같은 집은 부동산 소장이 꼭 꼭 숨겨둔다는 걸.


운이 좋았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매물이 하나 있었다. 상가 위에 있는 옥탑방이었다.

내가 딱 원하던 그림이었다. 옥상엔 상수도까지 설치되어 있어 여름에 바닥 청소를 핑계 삼아 물을 뿌려가며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전 주인이 살면서 키우던 화분 몇 개를 그대로 키우기로 했다. 겨울엔 잠시 구석 보일러실로 가야 했었지만 눈이 내리는 날 빼고는 한 자리 차지 했다. 기억 속 나는 식물 키우기에 관심이나 재능은 없었다. 하지만 이때가 기회다 싶어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인터넷에서 모종 키우는 법도 찾아왔다. '이러다 옥상 전체가 녹색으로 되진 않겠지?' 하는 건방진 착각도 해봤다. 옥상 난간을 경계로 울타리를 세웠다.


옥상정원사, 옥상 농부가 되겠다는 나의 도전은 두 달이 되기 도 전에 끝났다. 모종 화분에 퇴기도 주고 해충관리도 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러질 못했다. 반면 이전 주인의 사랑을 받은 식물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어떤 건 뿌리가 화분 흙 위로 튀어나와 분갈이를 해줘야 할 정도였다.


실패를 징검다리 삼아 겨울에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찬 바람을 막아주고 습도 관리까지 할 수 있다는 텃밭용 비닐하우스를 찾아냈다. 바로 구매해 설치했다.


겨울에도 관리가 된 덕분인지 적상추와 당근이 열렸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심어 둔 수박과 토마토는 싹이 나질 않았다. 역시 생명을 키운 키운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눈이 많이 내렸다. 하우스가 무너질까 빗질을 하며 안을 살폈다. 낯선 얼굴이 하나 보였다. 딸기였다. 비록 마트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나 가치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이름 그대로 딸기가 맞았다. 빨간 몸통에 노랑 씨앗이 박혀 있는. 바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입구를 잘 막는데 입 안에 새콤한 맛이 느껴졌다.


뿌리가 흙을 뚫고 나온 화분을 들었다. 봄이 아니긴 하지만 몇 개로 나누어 볼 생각이었다. 지붕 밑으로 눈을 피해 들어갔다. 인터넷에서 보고 배운 것처럼 뿌리의 흙을 털어가며 조금씩 나누었다. 미리 준비한 화분에 옮겨 심고 분 갈이용 흙까지 넣어줬다. 태어나 처음으로 해본 일이었다. 옷과 양말. 주변은 흙 투성이가 됐다. 허리가 아프고 겨울인데도 등에 땀 이 날 정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다.


텃밭 가꾸기, 화분 분갈이 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조금씩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됐고 해결책을 터득할 수 있었다.

상추, 당근은 내 노력만큼 얻은 것이고, 딸기는 될 대로 대라며 포기하는 심정으로 심었다. 처음에는 뿌리가 자리 늘 잡지 못하는 가 해서 뽑아 버릴까 하다가 그냥 두었더니 보기만 하는데도 벌써부터 입에 침이 고인다.


옥상으로 이사를 결정한 이유 중엔 단순 한 여름 밤하늘을 보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자꾸만 남들과 내 삶을 비교하느라 바쁜 나를 잠시 외진 곳으로 떨어뜨려놓기 위함이었다.


옥상 생활을 시작한 지 저번달로 만 1년이 지났다. 큰 길가에 있는 터라 처음엔 주변에서 들리는 소음이 신경 쓰였지만 그것도 얼마 않갔다. 대신 라디오를 틀어놓고 청소하고 책 읽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럼 마치 외딴 산속에 들어와 혼자 있는 기분이 든다.


며칠 전 동료 A가 옥탑방 생활은 어떻냐고 물었다. 나는 상황을 "머리 깎고 산에서 생활하는 스님이 될 수는 없으니 대신해서 옥상에서 도를 닦는 마음으로 지내는 중이라 괜찮다."라고 답했다.

과거 직장에서 겪은 경쟁에 치여 힘들어하고 있는 날 알고 있었기에 쉽게 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비교와 급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글 잘 쓰는 사람 보면 그렇다. 그럼 옥상에서 제 삶 잘 살고 있는 녀석들을 생각한다. 비닐하우스 하나만 쳐줘도 한 겨울 잘 버티는 걸 보면 각자만의 성장 속도가 있고, 때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결실을 맺는 것 같다.


나의 오늘을 기록하는 마음은 항상 똑같다. 매일 더디지만 조금씩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생에 옥상 농부는 틀렸다. 대신 옥상 작가라는 타이틀은 계속 연습하면 될 것 같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던 딸기 같은 글감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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