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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00 글쓰기 1일 차] 작가의 자격

by 회색달

100분 동안 100일의 글 쓰기

* 뭐 술도 마시고 피곤할 땐 쓰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미리 더 써놓던가 하면 됨. 목표는 크게!


사람들은 내가 책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면 의아해했다. “네가 책을 쓴다고?, 그럼 작가야? 서점에 네 이름으로 나온 책이 전시되어 있는 거야?”.


19년도 겨울, 책 쓰기 수업을 수료했다. 그날 수료증을 받은 작가 지망생은 열다섯. 나이도 직업도 다양했다. 스무 살 대학생, 예순을 넘긴 할머니,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도 있었다. 수료만 하면 뚝딱하고 써질 줄 알았다.(1)


착각이었다. 배움은 복습이 반복되어야 그제야 내 것이 된다. 그 뒤로 이어진 걸레 같은 초고와의 전투. 쓰다 말다를 반복하다 결국 20년 겨울에 잠시 휴전을 선언했다.


노트북을 덮어 놓은지 몇 달은 됐다. 마지막으로 언제 전원을 켰는지 기억도 나질 않았다.

어쩌다 노트북 앞에 앉을 때면 스마트폰 속 쇼츠 영상이 자꾸 유혹했다.


혼 술이 시작된 시점도 이때부터였다. 퇴근 후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한다는 핑계였다. 점점 노트북은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가 되어갔다. 그 사이 스마트폰으로 짧은 글을 썼다. 매일 쓰겠다는 자기 약속은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노트북과 거리가 가까워진 계기가 있다. 직장 동료의 제안으로 참가한 경연대회 덕분이었다. 경연 주제는 도박 예방과 인권감수성 높이기 두 가지였다. 몇 년 전부터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교육이 늘었다. 공기업이든 사 기업이든 구분 없었다.


외부에서 강사를 섭외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다. 어디서 누구를 섭외해야 하는지 몰랐다.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접수되는 공문에서 대상자를 물색해야 했다. 답답했다. ‘이럴 시간에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강사 교육을 찾아 신청했다. 덕분에 나는 두 개의 전문강사 자격을 취득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교육생들의 마음에 쏙 들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교육 전날 PPT를 만들고 사람 없는 교육장에서 발표 연습을 해본다.

노력 한 만큼 나의 발표력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뿐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 앞에 서 마이크를 잡을 때면 손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때 나만의 긴장 해소법이 있다. 맨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을 눈을 마주 보며 오늘의 날씨는 어땠는지 요즘 유행하는 노래는 들어 봤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다.


경연과 강연 시나리오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글과 친해졌다. 좀 더 흥미로운 주제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독서의 양도 자연스레 늘었다. 그만큼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고 글 쓰기 양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글쓰기 실력이란 신이 내린 재능이 아니다. 노력이 곧 재능이 된다. 더욱이 살아오면서 책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는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욱이 시간을 투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작년에는 작가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 될까 싶어 문예창작학과에 편입했다. 사이버 대학이라 직장 다니면서도 충분히 졸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도전 한일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야근과 시험이 겹치는 날에는 도서관에 앉아 시험을 응시해야 했다. 그리곤 다시 직장으로 가 일했다.

‘이걸 괜히 했나’ 싶을 때가 많았다.


대부분 과제가 글쓰기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어려웠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엇이든 시간을 투자한 만큼 나아지는 법이라는 믿음으로 주말마다 도서관에 앉아 책과 씨름하며 자료를 만들어 냈다. 지겹게만 느껴졌던 대학 생활, 어느덧 마지막 학기의 시험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글 쓰기를 시작한 지 5년 차가 됐지만, 아직도 노트북의 빈 화면을 볼 때면 막막함이 먼저 든다. 글은 결핍의 산물이다. 자신에게서부터 상실된 나를 찾아오는 작업이다. 모든 사람이 백 프로 만족하고 산다면 글 은 존재 하지 않을 터다. 그만큼 조금이라도 더 나아가기 위한 자신의 노력을 증명하는 길이 글 쓰기다.


직장 동료에게로부터 ‘왜 쓰는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의 대답을 오늘에서야 찾아냈다.


23년 겨울 월간지 <좋은 생각>에서 주관한 청년 문학상 2에 ‘오지랖과 용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공모했다. 과거 당선작과 심사위원의 소감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있었다. 좋은 글을 쓸수록 사람의 생각과 태도가 조금씩 나아진다는 점이다.

직접 몸으로 느꼈다. A4용지 한 장 도 쓰지 못하던 내가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시간이 늘수록 글의 양이 늘었고, 같은 해 12월 나의 이름이 공모 결과에 올라온 걸 보면 틀린 건 아닐터다.


매달 한 달에 한번 자이언트 작가의 출간 기념 사인회가 열린다. 몇 년째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글쓰기에 매달렸기에 나 또한 출간의 꿈을 안고 다른 작가 사인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축하 꽃다발 받으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에 사인을 한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날만큼은 대한민국에 내 이름의 집 한 채 없어도 분명 등 따뜻하겠지.

언어의 집 한 채를 가진 셈이니까.


사인회 가 반복 될수록 조바심이 생겼다. 급기야 나는 이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는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까지 생겼다. 의심의 질문은 실력과 자격으로까지 꼬리를 물었다. 어떻게 해야 나도 작가의 실력과 자 있을까?.


글을 쓰면 누구나 작가다. 스마트폰으로 쓰더라도 노트북으로 쓰더라도,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쉬지 않고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라면 작가다. 매일의 반복이 쌓여 능력이 된다면 어느새 작가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순간이 바로 작가의 길이고, 자신의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키를 잡고 있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결국 작가의 자격이란 내 삶의 자격을 먼저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완벽한 글을 빚는 작가는 아니지만, 묵묵히 오늘 한 페이지, 내일 또 한 페이지 쓰다 보면 작가의 자격을 어느새 갖추고 있을 거라는 위안을 해본다.


세상 모든 곳엔 글 씨앗이 있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씨앗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씩 찾아 노트에 옮겨 심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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