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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달리 Feb 03. 2024

14.실패할 용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작가, 작가, 작가라....;'

한참을 멍하니 앉아 혼말을 했다. 켜 놓은 노트북은 어느새 절전모드로 바뀌었고 검은색 화면에 얼굴이 비쳤다.

유독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 있다. 며칠 동안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글쓰기를 잘 이어가다가 회식의 여파가 머리를 채우는, 오늘 같은 날이 그렇다.

 양팔을 크게 벌려 기지개를 켰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마우스에 오른손을 가져다 대 살짝 움직였다. 화면에 보이는 건 다시 보이는 하얀 여백뿐. 맨  칸에 검은색 막대만 깜박였다.


'재능이 없는 건가...'

' 네가 무슨 글 쓰는 재능이 있다고 그래?.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괜히 힘 빼지 말고, 주말인데 잠이나 자지 그래?'


마음속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말이 이런 뜻일까,며 칠째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진 술자리 탓을 하며 괜히 책상 너머 침대와 소파를 번갈아 봤다.

'내가 이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이번 주에는 퇴근 후 약속이 많았던 이유로 평소 연재하고 있던 SNS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니 더 기분이 우울할 수밖에.


침대를 바라보던 자리에서 아예 의자를 돌려 앉았다. 정면으로 보이는 건 창밖 하늘. 재 작년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을 한데 모아 지금의 아파트를 매입했다. 새 집에서 새 글을 쓰겠다는 이유였지만, 정창문 밖 풍경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느라 글 쓰는 날이 적었다.

월요일에는 인사팀 선배와, 화요일은 친구들, 수요일은 전 직장 동료, 목요일은 다시 친구들,

어제, 금요일은 아파트 입주민 모임까지 갔으니 그럴 수밖에.


 

머리도 아픈데 책상이나 정리하자 싶었다. 월간 잡지부터 여기저기에서 모아 온 메모의 흔적이 뒤섞여 기록인지, 쓰레기 더미 인지, 모를 광경.

 책상 위에는 한참 전에 사다 놓은 책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이은대 작가님의 '최고다, 내 인생!'이었다. 표지와 목차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뭐, 런 사람이 다 있나'싶었다. 사업 실패와, 뿔뿔이 흩어진 가족 이야기, 나중에는 교도소에까지 갔단다. 모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패만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전혀 상관없는 미지의 세상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모든 건 이 책 한 권으로부터 시작됐다. 내가 글쓰기를 마음먹은 것도, 비싼 글쓰기 수업료를 지불하면서도, 한 겨울 서 강의장까지 찾아간 것도. 모든 동기부여의 시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글에 대한 아무 기초지식도 없던 내가 글 쓰는 일을 시작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으니까.

 

한 번은 서울 강의장에서 같이 수업을 듣고 있던 수강생 한 분이 질문한 적 있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당시를 떠올리자면 작가님의 실패 극복기의 팁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작가님, 어떻게 하면 작가님처럼 실패를 계속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솔직하면 됩니다."

"솔직이요?. 거짓말하지 말라는 의미인가요?"

"아뇨. 거짓과 반대되는 말은 진실입니다. 솔직이라는 말은 내 삶에 솔직하면 된다는 겁니다."

"..."

"조금 어려울 겁니다. 나에게 솔직하라니, 무슨 말인가 싶으실 겁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살면서 실패 한 번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다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걸어갑니다. 다만 넘어졌을 때 누군가는 돌부리를 탓할 수도 있고 풀려버린 운동화 끈을, 푹 꺼져있던 바닥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건 아닙니다. 넘어진 이유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에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기만 하면 됩니다. 자꾸 남 탓, 세상 탓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수 십 명이 모인 강의장은 순간 조용해졌다. 나 역시 내가 넘어진 이유를 찾느라 자꾸만 현재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았나 되돌아봤다. 그저 세상에 투덜거리고 불평불만만 하는 철부지인 내 모습이 보였다. 그 자리에서 다짐했었다. 다시는 삶 앞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찾느라 망설이고 있지 않겠노라고.


'그래, 그땐 이 책이 나를 이끌어줬지. 그러다가 연재를 시작했고, 나도 작가라는 꿈을 키우기 시작한 거고. 근데 왜 자꾸만 다짐은 기억에서 금방 지워질까'

 몸과 마음 피로감이 나를 괴롭힐 때마다, 그날의 다짐을 떠올리며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나 역시 넘어지기를 수 십, 수 백 번이었지만 그때마다 글쓰기를 통해 '내 삶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른 한 토요일 오후 두 시, 주말인데도 작가님에게 글쓰기 수업을 들은 문하생의 이름으로 출간했다는 소식에 작가 채팅방이 떠들썩하다. 나도 계속 쓰기를 이어가 봐야겠다.

그동안 겪은 실패를 경험이라 부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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