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00글쓰기21]재미없는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작가를 꿈꾸는 아저씨 이야기
글쓰기는 ‘지루한 일’ 중 하나다. 17년부터 시작한 일을 7년째 반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작가입니다.’라고 선뜻 말을 못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작가’를 꿈꾼다고 나를 소개하면 어떤 사람은 ‘그거 돈이 됩니까? (재벌 집 막내아들 극 중 진양철 회장의 대사 중 일부)’라거나 자신의 주변에 작가 지망생을 처음 봤다며 신기한 반응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즐길 거리를 쉽게 찾을 수 있고 필요한 정보 역시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금방 얻을 수 있으니 가만히 앉아 책장을 넘기고, 쓰는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신기할 수밖에.
이 일을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무조건 재미를 쫓았다. 직장에서도 삶에서도 나의 흥미를 끌 만한 일이 아니면 관심 안 뒀다. 그러다 번쩍이는 무언가가 주변에 나타나면 곧바로 따라갔다. 재미라는 특성 중 하나가 ‘함께’라고 생각한다. 사실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성격이 못 된다. 누가 하는 일이 좋아 보이면 따라 하기 일쑤였다. 억지로 재미까지 붙였다.
하지만 지금껏 따라갔었던 모든 재미는 금방 휘발됐다. 정작 시간이 지나 ‘이 일이 내가 원하는 게 맞았나?’ 싶었다. 여행이든 여러 종목의 운동이든, 자격증 공부든.
나는 어쩌다 여가가 생긴다면 혼자만의 세상에 푹 빠져 있기를 좋아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도움 될 만한 정보를 공유하며 지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장시간 이야기를 하다 생체 배터리가 닳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바로 나였다. 단순 취미를 넘어 무언가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서라도 나의 성향이 고려되어야 했다.
각자의 마음에 쏙 드는 취미생활 하나쯤은 있을 터다. 내게 있어 독서가 그랬다. 기본적으로 ‘읽는다’라는 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기회였다. 기회가 되어 시공간을 따지지 않는 독서 모임에 참여할 때도 있었지만 남들이 나의 책장을 넘겨줄 수는 없다. 직장에서 점심시간 햇살 좋은 날 벤치에 앉아 책을 읽을 때, 커피 향 가득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을 때도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철저히 혼자가 되는 연습을 했다.
한 번은 ‘당신의 취미가 무엇입니까?’라는 글을 써 지역 신문사에 기고한 적 있다. 무더운 여름 피서지를 떠나는 길에 책 한 권을 가방에 챙겨가 낯선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함을 책과 함께 보내면 어떠냐는 내용이었다. 분명 다른 글에 비하면 수준이 떨어지는 내용이었을 텐데도 운 좋게 실렸다.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하실 것 같아요.’라고 하지만 내 성격이 또 완전히 그렇지만은 않다.
때로는 숨 막힐 것 같은 적막함을 피해 시끄러운 음악 소리 가득한 헬스장을 찾아 몸을 짓누르는 무게와 싸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제는 읽고 쓰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내 삶의 일부가 됐다. 독서든 운동이든 하루, 일주일의 목표를 정해 놓고는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중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매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의 유튜브 음악을 틀어 놓고 무게를 잡은 체 글을 쓰려다가 short 영상의 무한 알고리즘에 빠져 얼렁뚱땅 시간을 보낸 적도 많다. 무조건 나에게 도움 되는 일을 한다며 하루를 악착같이 살아가기엔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걸 손바닥만 한 작은 유리화면 속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다 ‘아,’ ‘이런’ 혼잣말을 하며 시간을 확인하고는 현자 타임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래도 스스로 다그치거나 비난하지는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버리면 될 일이니까.
글과 친해진다는 건 상당히 재미없고 따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 낭비하기 싫어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내 모습을 기대하며 반복했었을 이었지만, 사실 읽기 자체만으로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 작가의 의도는 자신이 남겨놓은 기록을 따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따라오길 기대했을 터다.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도움 될 만한 경험을 들려주고 싶은지 수많은 시간을 고민한 흔적이다.
그 내용을 이해하고 내게 적용하기 위해선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을 대입시켜 작은 실천과제라도 만들고 반복해야 한다. 근육운동을 며칠 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근육이 쑥쑥 자라나지는 않는다. 만약 좋지 못한 습관을 반복하고 있었다면 해결 방법을 고민하고 작가의 근거 있는 경험을 일부 따라 하면서 1cm라도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것. 이 과정이 진정한 독서였다. 만약 한 자리에 오래도록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 사람이 있다면, 이 일은 고통 그 자체일 터다. 다만 내가 삶의 어떤 목표가 생겼을 땐 단순한 재미 본단 ‘매저키스트’에 가까운 삶의 태도가 도움 된다.
‘책 읽는 일이 무슨 재미가 있냐’라고 묻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고집스럽게 몇 년간 책을 놓지 않고 글을 쓰고 브런치 Story에 도전하기를 반복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자꾸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른 체 남들이 이루어놓은 결과를 부러워하다 뒤따라간 경험이 많아서다. 남들의 SNS의 게시물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느라 보낸 시간을 모두 더한다면 몇 년은 된다. 그러다 보니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힘을 기르기 위해 선택한 길이다.
두 번째는 막연한 미래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24년 12월 출간한 공저 <모든 순간마다 선택은 옳았다>에서도 일부 말한 적 있지만, 아직도 내가 정확히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는 다 생각하고 동시에 내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두려움보단 내일의 기대감이 더 커졌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퇴근 후엔 술잔에 위로받던 마음을 대신하기까지 하는 수준이 됐다.
24년도 11월 26일 국어사전에만 있었던 성장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만의 문장 사전에 생겼다. 남의 이야기 듣고 고개 끄덕이며 보냈던 시간이 모여 습작이 되더니 다음엔 일기, 수필로 이어졌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니터의 빈 화면에 깜박이는 건 검은색 커서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A4용지 한 장도 너끈히 채운다. 이런 경험이 쌓여 만들어내는 하루라는 벽돌은 내 삶의 든든한 성벽이 되리라 믿는다. 지금도 주방 식탁 위엔 얼마 전 새로 산 신간과 지인들의 청탁으로 서평을 써줘야 하는 책이 쌓여 있는데 ‘언제 다 읽지’ 막막함보다는 그 시간 동안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에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걸 느낄 정도다.
얼마 전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본 적 있다. 처음 드는 생각은 10년을 목표하고 있는데 지금껏 머릿속 가득 찼었던 고민과 걱정을 하나둘 꺼내어 보다 보면 아마 죽기 직전에도 노트북을 끼고 있을지도. 만약 머릿속 생각만으로도 저절로 노트북에 글이 옮겨지는 기계가 발명된다면 꼭 사보고 싶다. 가뜩이나 손목과 허리, 목디스크가 있어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게 힘든데 노트북 앞에서 지루한 일 하다 병이 깊어진 느낌이다. 지난주부터는 안약까지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쓰기를 고집하고 꿈꾸는 이유는 쓰다 보니 흔들리지 않는 나를 찾았고 앞으로도 나를 뒷받침하고 있으리라는 걸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