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경기 중계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마치 미리 짜놓은 듯한 영화 한 편을 보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21년도 유럽 EPL 리그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 선수의 마지막 경기가 그렇다. 경기 초반까지 상대 팀 수비 선수의 집중견제를 받았던 그는, 후반 경기 종료 몇 분을 남겨두고 연속 골을 넣는 데 성공한다. 아시아 출신 최초로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열린 시간이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새벽이었음에도, 마지막까지 손흥민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밤잠 설쳤던 것 같다. 다음날 출근했을 때 사람들의 대화 주제가 모두 ‘손흥민’,‘득점왕'이었던 걸 보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말이다.
경기에서 나온 두 골 모두, 같은 팀 선수들이 사전에 철저히 준비했던 패스와 맞춰진 호흡 덕분에 이루어진 결과다. 어떤 방송에서는‘팀의 주장인 케인 선수가 공을 차면 어느새 손흥민이 가 있더라' 할 정도로 토트넘 축구팀은 최고의 조직력을 자랑했다.
한 편으로는 수많은 패스 중에서 몇 번이나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경기가 끝난 직후 EPL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당시 경기내용 중 손흥민 선수에게 성공된 패스의 횟수를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흥미로운 결과를 볼 수 있었는데, 손흥민 선수에게 정확하게 전달된 패스 성공률은 불과 10% 수준이라는 것이다. 겨우 열 번 중 한 번이 성공했고, 그 상황에서 두 골을 넣었다. 그가 골을 넣을 수 있었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실력도 뛰어났겠지만, 순간적으로 손흥민 선수를 막지 못한 상대 수비수의 실책 또한 한몫했으리라고 본다.
골을 넣기 위한 과정을 완벽하게 계획할 수는 없다. 평상시 연습할 때마다 골로 연결하기 위해 수많은 연습을 했을 것이고, 경기에서는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성공을 위해 준비할 수는 있겠지만,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공격수의 역할을 하는 손흥민 선수는 골을 넣기 위해 끊임없이 골문을 향해 달려들었을 것이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골문으로 쇄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고.
즉 축구경기에서 골을 넣기 위해서는 슛 자세가 불안정하더라도, 패스 성공률이 낮더라도, 다시 일어나 어떻게든 슛을 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골을 넣을 수 있는 비법인 셈이다.
새해가 되면 그럴듯한 계획을 하나쯤은 세운다. 취업을 위해 어학 공부 계획을, 건강을 위해 금연 혹은 금주 계획을, 여행을 위해 여행지 계획을, 독서 계획을, 당찬 포부를 세워 목돈을 모을 계획까지. 그동안 하지 못한 개개인의 계획이 매번 세워진다.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도전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인생을 쓰는 시간, 프로방스출판]의 임은자 작가의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첫 책을 출판하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활동을 멈추지 않은 그녀. 참, 고집 있다.
‘나는, 하나에 빠지면 끝을 봐야, 마음이 풀린다. 이번 책을 쓰는 동안 200일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라는 말에‘역시 대단한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도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글을 썼다는 이야기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가요, 어떻게 200일을 쉬지도 않고 쓸 수 있었을까요?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놀러 갈 수도 있죠. 약속도 해야죠. 사람인데, 같이 즐겨야죠. 그래도 이거 하니만큼은 지켰어요. 멈추지 않기. 친구들과 수다 떨다가도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써냈어요.’
그런 그녀의 본래 직업이 주부였다는 사실과 시어머니와 함께 국밥집을 하며 한여름 펄펄 끓는 국밥을 나르던 사람이었다는 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수 있다. 그녀의 책은 인생이다. 슬픈 일, 행복한 일 모두 적어놓은 시간. 그래서 책 제목이 [인생을 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손흥민 선수가 득점왕에 오를 수 있던 것도, 임은자 저자가 책을 펴낼 수 있었던 것 모두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축구경기는 골을 넣어야 승부가 난다. 아무리 멋진 패스와 훌륭한 선수가 있다 한들 골을 넣지 못하는 팀은 가치가 없다. 경기에 출전한 두 팀 모두 무승부만 기록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작가 또한 자신만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 반드시 책이 아니어도 좋다. 작가라는 의미는 ‘쓰는 사람'이니까. ‘글'은 작가가 아니다. 볼펜과 종이도 작가가 아니다. 오로지 글을 쓰는 사람만이 작가다. 영어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작가’란 ‘writer’. 즉, ‘쓰는 사람’이라고.
23년도 10월. 모 잡지사에서 주관한 수필 공모전에 내 이름, 세 글자가 올라왔다. 신기했다. 잡지사 공모전의 수상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어디 앞장서하는 일은 없던 내가, 갑자기(?).
전후 사정은 이랬다. 16년도부터 이어온 독서와 글쓰기 과정에서 배운 ‘용기’를 직접 실천하고자 쓴 내용이었는데, 늘 ‘망설임’ 때문에 멈추기를 반복했던 나를 반성하는 글이었다.
당시 같이 지역에서 독서 모임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도 공모전에 도전해 보자는 권유를 했었는데 대부분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았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써 놓은 글이 없어서…….' ‘저는 어려울 것 같아요….'
시간이 흘렀음에도 도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매번 같은 자리다. 마치 새해에 새로운 다짐이라며 거창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처럼.
당차게 외치던 그 계획, 작년에도 얼마 못 갔던 건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목표를 세우는 일은 중요하다. 골을 넣기 위한 계획, 글쓰기, 책을 완성하기 위한 계획. 하지만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실행과 포기하지 않는 끈기. 그리고 이 둘의 반복.
도중에 실패할 수도 있다. 수비수에게 볼을 빼앗길 수도 있고 골대를 한 참 벗어나는 슛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공격수는 어떻게든 슈팅을 해야 한다. 축구 선수의 임무다. 작가 역시 누구에게 보여주기 창피한 글도 써봐야 한다. 골을 많이 넣는 축구 선수가 ‘똥 볼’ 을 차더라도 말이다.
페널티킥을 시도하기 위해 공 앞에 서 있는 축구 선수도 골을 넣을 수 있는 확률이 100%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공격수의 슛을 막기 위해 발을 내민 상대 수비수의 발을 맞고 골로 이어지는 예도 있다. 얼떨결에 골을 넣어 득점에 성공했어도 골은 골이다. 승리의 요건이니까.
이전의 내 성공도 그랬었나 싶다. 글을 뛰어나게 잘 써서도 아니다. 잡지사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다. 세어보면 골문 근처도 가지 못한 슈팅이 더 많은 사람이‘나’다.
그런 무리해 보이기만 한 도전을 성공으로 연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나 역시 멈추지 않았던 덕분이다. 성공에 완벽한 준비는 없다. 모두 공격수가 되어야 한다. 허공에 공을 날려버려도 좋으니 무조건 질러야 한다. 나의 허공을 가른 슛이 막기 어려운 독수리 슛이 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