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책 쓰고 지낸다는 말을 하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의 하나같은 반응이었다. 그래도 이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할 일 없냐?’, ‘그거 하면 한강 작가처럼 돈 많이 버는 거냐?’ ‘책은 쓰면 좋냐?’, ‘그래서 출간은 해봤냐?’ 등 무어라 대답하기 답답한 질문을 받았을 땐 이렇게 에둘러 말했다.
“그냥 취미 삼아 쓰는 거지 뭐….”
취미를 가져본 사람은 안다.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걸. 자랑하고 인정받고 싶을 때도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식 자리를 슬쩍 피해 독서카페에 들러 목표했던 글을 쓰고 나오는데 하필 과장 일행과 딱 마주쳤던 날 자격증 시험공부를 하느라 잠시 들렀다고 핑계를 댔다. 아무런 결과 없는 시간 투자에 괜한 오해를 받는 것보단 열심히 사는 모습을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글쓰기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을 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다 보니 막상 마음속 말은 나오질 못했다. 쓴다는 건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함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멋짐이 있다는 말과 삶의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은 한 편의 역사서를 만드는 것과도 같으니 당신들도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 는 말이다.
몇 년 전부터 신규 작가의 출간 도서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글 쓰는 취미’는 지루하고 뭐 하러 그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핀잔의 대상이다. 아시아 최초 문학작품으로 노벨상을 받는 사람과 같은 시대, 같은 국가에서 살고 있음에도 뉴스 속 남 이야기일 뿐이다. 신기하다는 찰나의 관심 후엔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하며 산다.
한번은 회식 자리에서 친한 동료 K에게 그동안 꿈만 꾸고 있었던 브런치 story 등단 소식을 전한 적 있었다. 물론 K는 글과 친하지는 않았기에 등단이 무엇인지, 통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별로 관심 있게 듣지는 않았다. 대신 자신이 요즘 골프장 필드에 나가기 시작했다는 말과 스윙장면이 녹화된 영상을 나에게 자랑삼아 내밀었다. 실내 스크린 골프장 다니던 사람이 얼마 안 되어 실제 골프 경기를 한다니, 평소에도 운동신경이 좋아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던 K였기에 영상 속 ‘나이스 샷’의 외침이 조금은 부러웠다.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들은 어떤 일이든 뚝딱 잘 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엔 나만 그대로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3번의 거절 메일을 받은 후 네이버, 유튜브, 브런치 story까지 뒤져가며 ‘등단 비법’을 찾았다. 누구는 한 번에 승인 메일을 받았다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홉 번째 거절 이후 실패가 두려워 열 번째 도전을 포기한 체 글도 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회를 살아가기에 성공이라는 옷을 입지 못한다면 실패인 걸까.
30대 중반까지 항상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그에 비해 내 삶은 온통 콤플렉스가 뒤섞여있었다. 뛰어난 운동신경이 있는 편도 아니었고, 고등학교 졸업할 땐 전교 꼴찌 성적표를 받았다. 뒤늦게 글쓰기에 관심이 생겨 읽는 것부터 시작해 떠오르는 생각 몇 줄을 옮겨봤지만 그게 전부였다. SNS에 습작을 올려 두었을 땐 사람들의 관심에 목말라 있었다. 많은 하트, 따봉을 받아야만 잘 쓰는 글이고 인정받을 수 있는 글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의 공감을 많이 받는다는 유명 작가의 글을 따라 써보기도 하면서 나름 나만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는 네 번째 거절 메일뿐이었다. 2020년도에는 책 출간을 위해 거의 천 곳이 넘는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지만 전부 대답은 없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흔들림에도 얼마 남지 않은 자존감은 출렁였고 결국엔 글과 거리를 뒀다. 20년도의 일이었다. 이 시기를 억지로 떠올리려 해도 기억 나는 일이 없다. 누군가가 송두리째 들어내 잘라 버린 기분이다. 중간에 남아있는 블로그의 비공개 일기를 읽으며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이 더 많다는 걸 깨달은 것도 이때 즈음이었다.
거절과 실패는 내 삶에서 부족한 부분을 끄집어냈다. 그래도 노력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퇴근 후 밤잠 포기하며 썼지만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았다. 마음속 자기 검열관은 수시로 끊임없이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어차피 나 말고도 작가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으니 굳이 내가 존재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내가 글쓰기 자신감이 생긴 건 몇백 편의 글이 쌓이면서부터다. 빈도는 실력을 만든다. 삽질의 글이 더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일부 문장을 수정하고 살을 붙이니 그럴싸한 내용이 됐다. 글쓰기의 효능은 바닥을 닦아낸 걸레를 많이 가질수록 나타난다. 모든 초고는 걸레라고 하지 않았는가. 삶에 도움 되는 진정한 효능은 ‘성공하든 돈을 많이 벌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장편의 글을 쓰겠다며 한 번 노트북 앞에 앉으면 기본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은 움직이질 않는다. 그건 스마트폰을 이용해 쓸 때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허리와 팔목엔 수시로 파스 붙였다가 뗀 흔적이 남아있다. 마지막 마침표가 원하는 곳에서 끝나질 않아 이리저리 몸을 꼬아봐도 답 없는 날이 많다. 그럴 때면 모니터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말 안되는 문장이라도 가져다 붙여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한 이상, 고민에 휩싸여 한숨 내쉬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베스트 셀러 작가도, 브런치 story의 닉네임 앞에 ‘S’ 딱지가 붙지 않아도 (일종의 인플루언서 같은 유명 작가를 인증하는 표시) 나는 사람들이 인정하는 ‘성공’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사랑하게 됐다.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 부모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보다 하루 한쪽씩 쌓여가는 나의 일기가 많아질수록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끔 시를 흉내 내며 남겨둔 몇 줄의 일기는 몇 차례 공모전에 입선해서는 상금을 타다 줬고, 제법 쌓인 글감 덕분에 책을 쓸 자신감마저 생겼다.
지금의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스포츠 모델 대회에 나갈 정도로 몸을 키우고 빼기를 반복하며 4년째 매해 바디프로필을 촬영하는 삶에서 노트북에서 나오는 파장을 막기 위해 필터 렌즈의 안경을 쓰고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 뱃살도 그때 비하면 몇 인치나 늘었다. 간혹 소화도 안 되어 더부룩한 속을 위해 제로 콜라를 수시로 마시며 입에도 대지 않았던 커피를 하루 한 잔 이상씩 수혈하고 있게 되었다. 하지만 행복하다.
좋아하는 일과 돈을 벌 수 있는 일 중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물론 두 가지를 모두 한 번에 충족시킬 수야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건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직장 다니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며 그 경험담을 책으로 쓴 사람도 있다는데, 나도 소소한 삶에서 특별함을 찾아 기록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길 고대한다. 그러려면 일단은 내가 더 써야 할 노릇인데, 쉽지 않아 고민이다. 출판사에서 여는 온 오프라인 수업에 참석할 때도, 조금이라도 친분 있는 다른 작가의 신간 출간 소식을 들었을 때도 지갑이 열려야 하는데 막상 마지막 결제창의 ‘확인’ 버튼에서 망설인다.
“돈은 좀 버냐?”이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의 방향을 찾아가는 중이다.
“돈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니, 언젠가 인기 상품 작가가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는 나를 좀 응원해 주지 않겠느냐?”라고.
* 이 페이지의 초고를 마친 다음 날 <모든 순간마다 선택은 옳았다>는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왔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땐 좋아하기만 하면 됩니다. 결과를 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성공을 바라는 일이지, 좋아하는 일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