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00 글쓰기 23] 차라리 직접 쓰고 말지

작가를 꿈꾸는 아저씨 이야기

by 회색달
강한 신념에 의해서 강한 인간이 태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한층 더 인간을 강하게 한다
- 웰터 바토즈


과거에 내가 글쓰기를 배운 적은 두 번이다. 첫 번째는 SNS에서 자기 계발 서적 출간으로 유명한 작가의 무료 강의였고 두 번째는 글쓰기 플랫폼 ‘E땡땡’였다.


기억으로 두 번 다 ‘크땡’에서 저지른 일이었는데 ‘ 한 달 커피 한잔 가격으로 책 한 권 쓸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를 본 후였을 것이다. 이런 자극적인 문장은 나 같은 사람에게 꽤나 효과적이었다.


‘해보고 싶은 일이긴 한데 비싸긴 한데’라는 생각은 당시 그동안의 내 삶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하였는가 하는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커피 한잔 가격이면 충분하다니 혹할 수밖에.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온라인으로 수강생을 모집하는 ‘큐땡’ 은 다양한 경험 집합소였다. 한 달이면 뱃살을 뺄 수 있다는 다이어트 성공기부터 시작해서 최소한의 금액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꿀팁이라던가. 글쓰기와 책 쓰는 방법은 그중 하나였다.


‘야, 너 쓴다며! 그동안 미적거리다가 날린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벌써 책 몇 권 쓰고도 남았겠다.’ 결국 미끼를 문 나는 무료 강의를 신청하고 곧이어 20만 원짜리 책 쓰기 온라인 수업을 신청했다.

줌으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는데 참여한 적은 세 번이 되질 않았다.


직장에서 일하다 퇴근하면 피곤한데 어떻게 글을 쓰겠냐는 핑계가 우선이었다. 다음은 매주 나누어 주는 과제에 부담을 느껴 접속은 했지만 슬그머니 화면을 껐다. 다른 수강생들은 열심히 자신의 글을 읽고 검토를 받는데 대부분 창작학과 학생이거나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들 틈에 끼자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온라인이었지만 이 세상은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단체 채팅방도 있었는데 매일 아침 6시만 되면 ‘미라클 모닝’ 인증 사진이 올라왔다. 뒤이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쓰는 ‘아침 일기’,‘감사일기’의 나열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사람들은 잠은 자는가 의심이 들었다.


무슨 재미로 잠도 포기해 가며 하는지 모르겠고, 수업을 듣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의 전원을 켜도 화면에 보이는 건 A4용지의 하얀 화면뿐이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칠 때쯤 채팅방에 공지 하나가 올라왔다. ‘자비출판 희망자를 모집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자비라는 말보다 출판과 희망에만 눈이 갔다. 자비는 출판사 이름인 줄 알았다. 나중에서야 내가 출판사에 글과 함께 돈을 내면 책을 출판해 준다는 걸 알았다. 말 그대로 ‘내 돈 내산’과 다를 바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번의 수업 모두 나에겐 실패였다. 수업에 지각하거나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는’ 과제는 차일피일 미루다 기한일 넘겨버려 결국 스스로 수업을 포기했다.


그래도 나중에라도 써먹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교제라도 요청했건만 단칼에 거절받았다. 나도 모르게 현타가 왔다. 나는 뭐라도 배우고 싶고, 중간에 포기하긴 했지만 결과를 얻고 싶었는데 마치 내가 남의 사업장에서 훼방 놓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후 글쓰기 수업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다시 글쓰기 수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신문기사에서 알게 된 책 한 권 때문이었다. 제목도, 표지도 강렬했다. <최고다! 내 인생> 이은대 작가의 책이었다. 개인 자서전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알코올 중독자, 수 십억의 빛 쟁이,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한 병을 앓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 나중엔 죄수복까지 입었다고 했다. 철장에 갇힌 체 하늘을 보는데 그제야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살면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던 순간이라고 회고했다. 그때부터 글을 썼고 출감되는 순간 ‘스스로 내 인생을 최고라 생각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라며 책을 출간했다는 후기를 읽었을 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글 쓰기 수업은 좀 들어 보셨어요?” 서른일곱에 처음으로 글 쓰는 법을 배워보기 위해 강의장을 찾았을 때 들었던 질문이다. 오로지 배우기 위해 내 돈을 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백만 원이나 됐다. 이 수업에 대해 책에서 알았을 때만 하더라도 이만한 액수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신청할 생각을 못했다. 아니 안 한 게 맞다. ‘돈을 지불하면서 까지 글 쓰기를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의 대답을 하지 못해서다.

이번만큼은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구글 폼으로 신청서를 작성했고 제출했다.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므로 내가 살고 있는 강원도 춘천에서 서울 강남까지 매주 토요일 아침 첫 기차를 타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생각 안 하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글을 쓰겠다’라는 다짐뿐이었다.


첫 번째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 ‘프로 포기러’였던 과거가 스멀스멀 떠올랐다. 예전 같으면 주말엔 늦잠 자거나 오후 늦게 일어나 스마트폰 속 영상을 보는 게 일상이었는데, 글을 제대로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니 내 삶의 면접관이 된 기분이다.


오늘은 어떻게 보냈는지, 앞으로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스스로 점검하고 확인받는 기분. 모두 글 쓰기 수업에서 배운 ‘쓰기 위해 돌아보기’라는 말을 실천한 덕분이다.


처음 강의장을 들어설 때 직감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뭐 하나라도 할 수 있겠다.’ 상가 건물의 지하에 있는 공유형 강의장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약 스무 명쯤 되는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눈에 봐도 나이대가 다양했다. 20대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부터 머리가 하얗게 된 할머니까지. 회사원으로 보이는 듯한 30, 40대도 있었지만 할머니께 받은 첫인상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게다가 수업은 아침 아홉 시에 시작해 오후 여섯 시가 돼서야 끝났는데 점심시간은커녕 중간 휴식시간은 따로 없었다. 작가님께서 ‘목이 아프니 5분만 쉬었다가 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쉬는 시간을 알리는 신호였다.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께서 물었다. “어떤 글을 쓰고 있으세요?”“예? 저는 아직까진 특별한 건 없는데, 일상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보통 이런 대화의 흐름이라면 ‘아 그렇구나’ 혹은 ‘저는’이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신기합니다.’라는 대답이 먼저였다. 자신은 나이 칠십이 다되어서야 삶을 돌아보게 됐는데 이제 마흔도 안된 사람이 직접 글을 쓰고 삶을 이야기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했다.

이어서 또 물었다 “그런데 왜 쓰세요?”. “......”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시선은 할머니의 얼굴을 향해 있는데 의식은 허공에 헤매는 기분. “어? 정말 제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 저도 모르겠는데요?, 이번에 그 답을 좀 얻어가야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작가 지망생 아니 글쓰기 덕후의 삶을 만들어준 글쓰기 수업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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