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으로 나쁜 습관 고치기
[100-100글쓰기 27]
갑자기 부는 찬 바람에 점퍼의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따뜻한 국물에 소주 한잔’이 생각났지만 금방 접어뒀다. 이틀 전에도 늦게까지 마신 술 때문이었다. 다음날 출근해서도 종일 속이 불편했다. 그땐 분명 다짐했다. ‘다시는 내가 술 마시나 봐라’. 그런데도 불과 하루 만에 또 술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나도 술을 좋아하긴 하나 보다.
퇴근길에 자주 가는 순댓국밥집에 갈까 하다 오늘은 마트로 향했다. 혼자 지내다 보니 잦은 외식 탓에 오늘 아침 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본 기억 때문이다. 10분을 운전해 마트에 도착해 입구 쪽으로 주차했다. 카트를 끌고 건물에 들어갔더니, 안경을 쓰고 있던 탓에 김이 서렸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입김으로 습기를 불어냈다.
저녁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면서 카트를 미는데도 다른 사람의 카트와 살짝살짝 닿았다.
냉장 코너 쪽으로 갔다. 1인 가구를 위한 Meal kit 음식 종류가 많았다. 혼 밥 전용 도시락도 보였다. 몇 개를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하다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비빔밥 한 그릇을 골랐다. 불투명한 플라스틱 뚜껑 안에 몇 가지의 나물과 달걀프라이 하나가 얹혀 있었다. 가격은 4900원. 카트를 가득 채울 생각은 없었으므로 목표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도취했다. 겨울바람을 뚫고 비빔밥을 얻었으니 이 정도면 오늘의 ‘아보행’(아주 보통의 하루)을 이룬 셈이다.
석가탄신일 날 사찰에 갔다. 자주 찾지는 않았어도 해결되지 않는 일 때문에 답답함을 느낄 때 들르는 곳이었다. 이런 날은 절에서 제공되는 비빔밥을 먹어야 했다. 종교를 믿는 건 아니었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맛의 매력에 이끌려 이곳을 몇 년째 찾는 이유이기도 했다.
사람들 뒤로 줄을 서 비빔밥 한 그릇을 받았다. 안을 눈으로 쓱 봤다. 갖은 나물과 양념되지 않은 고추장이 한 숟가락 얹혀 있었다. 밥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절반 이상을 채운 채소 덕분에 푸짐해 보였다.
눈으로 실컷 맛을 본 뒤에 숟가락으로 밥알을 크게 뭉쳐 입안에 넣었다. 우걱우걱 씹을수록 고소한 기름 향과 나물이 뒤섞여 맛있었다. 절에서 밥을 먹을 땐 말을 하거나 숟가락을 계속해서 들고 있으면 안 됐다.
오로지 입안의 음식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거의 명상에 가까운 행동에 밥 먹으면서도 스마트폰 영상에 의존하던 나였기에 처음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몇 번 씹다 삼키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기에 식사시간도 빨랐다 하지만 비빔밥은 그러질 못했다. 최소 열 번 이상은 씹어야 넘길 수 있었다. 나물 탓도 있었지만 맛 그 자체를 느끼다 보면 빨리 먹는 습관도 저절로 고쳐졌다.
TV에서 스님들의 식사시간을 두고 발우 공양이라고 하는 걸 본 적 있다. 여러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할 때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양만큼 덜어 먹는 식사 의식으로 음식물을 씹을 땐 소리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고 속도 또한 혼자 너무 빠르거나 느리지 않아야 했다. 처음엔 엄숙해 보이기까지 한 식사시간이 이상해 보였지만 먹는 것 하나에도 의미를 둔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집으로 돌아와 포장지를 뜯지도 않고 전자레인지에 2분을 돌렸다. 배가 고팠지만 참아야 했다. 마음이 급했지만 기다려야 했다. ‘삐삐’ 조리가 끝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비빔밥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났다. 곧바로 식탁으로 들고 가 앉았다. 숟가락으로 눌러 계란 프라이를 잘랐다. 고추장과 채소, 밥을 잘 비며 한 입 넣었다. 다시 두 입, 다시 세입. 마지막 숟가락까지 천천히 먹었다.
어느새 그릇의 바닥이 드러났다. 입에 넣기 편하게 하려고 숟가락으로 모양을 만들다 보니 속도는 느렸지만 나도 모르게 먹는 데에 집중하느라 스마트폰의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습관 고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집중하면 고칠 수 있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친다. 식사와 스마트폰이 그 예다. 이제 겨우 습관 하나를 길들여간다. 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가진 습관을 알고, 하나씩 고쳐가는 과정에서 삶은 성장하고 있음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