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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현기 Dec 18. 2024

삶은 모두에게 공평하다(2)

<길 위의 철학자>의 저자 에릭 호퍼, 미국의 사회철학자로 떠돌이 노동자에서 웨이터 보조, 사금 채취 공, 부두노동자의 삶까지 살면서 ‘삶을 여행처럼 살아왔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랬던 그가 어렸을 적 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다가 열다섯 살에 기적처럼 다시 시력을 회복했다.


그때부터 그의 독서가 시작됐다. 시력을 다시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어떤 책은 거의 암송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불행은 또다시 반복됐다. 불과 몇 년 후 아버지의 사망으로 그는 고아가 됐고 거리의 부랑자,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그런데도 광적인 독서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사색을 통해 얻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불행, 그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루어낸 호퍼의 업적.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나 외에는 원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거나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떠돌이 삶은 그에게 기회가 됐다. 누구나 말은 쉽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는 건 어렵다. 자신의 역경을 이겨내는 것도 자랑스러운 일인데, 아예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목표 없는 원망의 화살은 다시 나에게 날아오기 마련이다. 나는 부정적이고 원망으로 자신을 더 괴롭게 했다.


지금껏 살면서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불행이라 여겼다. 다시 읽어보니 나의 주관적 판단이었다. ‘내가 이렇게나 노력했는데’, ‘다시 하면 나아지기는 할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실패는 그대로다. 변하는 건 없다.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공으로부터도 한참 멀어지게 만든다.


 


30대의 내 삶은 실패라고 생각했다. 알코올 중독과 공황과 대인기피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건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술을 멀리하고 약을 조절한다. 어떤 선배는 ‘하루아침에 미친 x’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 시간을 묵묵히 걸어오니 오늘의 내가 반겨줬다. 며칠 전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룬 날이 있어 침대에서 뒤척이다 일어나 남겨둔 글이 있다.


내 삶에서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 지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발밑에 쌓인 실패가 나의 단단한 지지대가 될 것이다. 그때부터는 모든 실패에 감히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내 삶의 불필요한 일을 없애고 오로지 성장에만 집중한다.’


불평과 불만으로 하루를 채우던 나를 바꾸기 위해 남겨둔 반성문이었다.


‘모죽’이라는 대나무는 씨를 뿌려도 5년 동안은 작은 순이 나오는 것 말고는 아무 변화가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섯 번째의 해의 4월이 되면 하루에도 몇십 센티씩 무서운 속도로 자라 수십 미터까지 자란다. 의문에 의문을 더한 학자들이 땅을 파보았더니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 방황의 시간을 되돌아봤다.


그리고 더는 불행과 방황이라는 말보다 기회와 성장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책을 통해 삶을 배운다. 나 역시 불필요한 감정을 없애기 위해 읽고 쓰며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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